잠자고 있던 진공관 앰프의 역습

날씨와 태풍, 온오프 열충격 부담으로 아껴두었던 오로라 미니 인티를 드디어 가동했습니다.
중급 이하의 TR 앰프보다는 차라리 100만원 언저리의 진공관 앰프가 제 취향엔 좋게 들려서
스피커 위주로 쓰려고 냅뒀었는데, CD900ST를 냅다 꽂았습니다. 
무슨 물건이든 막 쓰면 없어지지만 아껴도 ♨ 되기 때문입니다.
켠지 얼마나 됐다고, 진공관 커버 열이 어마무시하게 올랐습니다.
이런 앰프는 본체 위에 헤드폰 올려두면 제대로 망합니다.
무지막지한 열 때문에 다이어프램 뒤틀릴 겁니다.

이거, 되게 민감합니다.
나드 인티에서는 전혀 없던 현상들이 나옵니다.
일단 험이 좀 들립니다.
스피커는 바로 앞에 가야 들립니다만, 헤드폰 쓰면 옛날 220V 승압공사 직후 옛날 가전제품을 
110V 강압트랜스 꽂아쓰던 시절, 강압트랜스에서 들리던 그 '뚜~' 하는 노이즈 입니다.
HDD 헤드가 자르륵 움직이면 지직지직 하는 노이즈도 나지막히 들려옵니다.

소리는...
이 앰프가 원래 그렇다기엔 뭔가 굉장히 부자연스럽도록 뻣뻣하게 경직된 소리가 나옵니다.
해상력도 안 나와요. 좀 쓰다 보면 유연하게 변할 것 같은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늘 느끼지만, 진공관은 정확도가 떨어지는데도 어느 레벨까지는 상급기를 쓰는 느낌이 들어요.
세세한 정보들을 뭉개서 부드럽게 한다고 하기에는 소리 하나하나가 의외로 꽤 구체적인데,
옛날 PC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부두 카드 Glide로 돌리는 것 같아요.
살짝 뿌연 듯한 느낌에 텍스쳐는 뭉개놔서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도 정작 다른 카드와
비교하면 디테일은 더 좋은 그런 희안한 느낌. 그리고 프레임 전환이 굉장히 매끄러운 느낌.

무엇보다도 나드 인티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일단 힘이 훨씬 좋은데 과하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그리고 소리의 속이 꽉 차 있는 느낌이 들어요. 하늘하늘 흔들리는 느낌이던 CD900ST의 소리가
제법 중심이 단단하게 잡혀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소리는 좋은데 뭔가 싸구려 느낌이 느껴지던게
갑자기 레퍼런스급 같은 안정감이 느껴져요. 얄팍하던 소리에 두께감이 더해지고, 소리 하나하나
엷게 울리는 느낌 없이 꽤 깊숙히 부욱 울리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소리 하나 내고 쉬어가는 느낌
없이 소리가 계속 쭉쭉 이어집니다. 리듬감 좋고 스피드도 좋고 마치 라이브 음악을 듣는 것처럼
굉장히 자연스러운 느낌이예요. 정확한 사운드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아주 하이엔드급이 아닌 한
엔트리급 가격대에서는 정확도는 이만하면 됐고 정보량과 스피드감이 좋으니 계속 함께 가자는
마음이 들어요. 개인적으로는 하이엔드급이라도 반도체 앰프는 이런 느낌에서는 늘 아쉬웠어요.


결론적으로, 나드 인티는 정리 후 계획했던 USB DAC로 전환하게 될 듯 합니다.
늘상 느꼈던 정보량의 부족과 소릿결의 거칠음은 직진성 좋은 느낌을 상쇄해버리는 느낌이예요.
DAC에는 지나친 비용을 투입하려고 하지 않고 있고, 알아본 바 SDAC는 평이 좀 거석하길래... :$ 

기변 라이프로 돌아갈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해서 고민 중이기는 한데...
여차하면 헤드폰앰프 기능 없는 순수 DAC로 갈아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니 인티의 문제라면 험 딱 하나인데, 이것만 제외하면 헤드폰을 장악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은
헤드폰 앰프의 용도로서도, 하이엔드급과 비교해도 꽤나 경쟁력이 있다는 느낌이예요.
AT-HA20이나 나드 인티 헤드폰단에서 각 헤드폰마다 느껴지던 특정 대역에서의 딥이나 공진이
얘로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요.
헤드폰 출력도 출력트랜스를 거쳐서 나오기 때문에 출력임피던스는 엄청나게 높은 녀석입니다.
반도체 앰프는 출력임피던스가 낮아야 헤드폰이 좀 제어가 되는데, 얘는 무슨 재주로...
이거, 헤드폰 출력 설계가 엉성해서 스피커로도 소리가 좀 새는 상태에서도 이 정도이니...
원래 스피커 전용 앰프인 걸 억지로 헤드폰 단을 달아서 헤드폰을 꼽으면 스피커 라인이 스위칭
오프 되도록 해놨는데, 이게 헤드폰 라인을 타고 스피커까지 돌아갔다 옵니다. -_-;;
그런데도 뿌연 진공관 치고 이 정도 투명감에 정보량에 전 대역 일사불란한 스피드.

...많이 마음에 듭니다만, 역시 편의성을 생각하면 DAC + 내장 반도체 앰프는 포기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이놈의 험...
일단 입력신호라인 쉴딩을 한 번 시도해봐야겠습니다. ㄱ-;;

간만에 켜본 앰프인데, 제 취향엔 꽤나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 번 잘 골랐다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제 USB DAC 결정만 남았네요.
아톰, 쉬트(쒵?)를 위시로 여러가지 고민 중이고, 정 안 되면 속편하게 LUI DAC 2 같은 고전기나 
외장형은 포기하고 지금 쓰는 ESI Juli@의 재부팅 해야 소리가 나오는 것만 잡자는 심산으로
아예 EVGA의 Nu Audio(오디오노트 합작)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