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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뮤직이즈라이프’가 군대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무라카미 무라카미
1086 3 5

 입대 전에 저는 주로 클래식 피아노 솔로 곡에 심취해있었습니다. 근데 입대하고 훈련소에서부터 음악을 들을 수가 없으니 미치겠는 겁니다. 들을 수 있는 건 군가밖에 없었죠. 먼지낀 귀에 그 군가조차 감사한 마음으로 일용할 양식이였지만,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입대전 자주 들었던 곡들을 머릿속에서 재생시켰습니다. 중간 중간 뚜렷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머리에서 재생되는 음악은 저에게 커다란 안식이었습니다. 제식훈련을 하며 오고 갈 때 특히 많이 재생버튼을 눌렀는데(생각해보니 불침번을 설 때는 정말 수없이 떠올렸습니다. 계속해서 머릿속에 생성시킨 곡들을 몇바퀴 돌리고 나면 불침번 시간이 끝나있었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슈만판타지 등이 주로 들었던 곡들입니다.

 자대 배치 후 첫 훈련이 불행하게도 2주간의 야영훈련이였습니다. 추운 겨울에 24인용 천막을 치고 생활해야했지만, 보직 상 타부대 건물 옆에 천막을 치게되어 그 부대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부대 그 화장실이 저에게는 그 때 처음 먹어본 즉각전투식량의 황홀한 맛보다 더 귀했습니다. 각종 클래식과 뉴에이지 음악이 편집되어 그 화장실에서 흘러나왔는데, 화장실에 갔다가 이 음악소리를 듣게 된 후, 시간이 될 때마다 화장실로 와 음악을 듣는 게 정말 달콤했습니다.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행복이였네요.

 윗 선임들이 모두 전역하고, 제가 최고 선임이 되어 겨울야간행군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일도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cdp를 들여와 보다 풍족한 음악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행군 전 문득 음악을 들으며 행군을 하고 싶어졌습니다.(간부들은 휴대폰 소유가 가능하기에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병사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저는 cdp를 방독면 가방에 숨긴 후, cdp와 연결된 이어폰 줄을 두꺼운 겨울군복 안으로 연결해 보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행군이 시작되고, 가로등 밖에 없는 어두캄캄한 시골을 가로지는 행군 무리 사이에서 군복 외투 안주머니에 숨겨둔 이어폰 유닛을 꺼내어 오른쪽 귀에만 끼었습니다. 이어폰을 한쪽만 낀 이유는 누군가 나를 부를 때 즉각 반응하지않으면 들킬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위켄드의 ‘beauty behind the madness’ 앨범을 넣어둔 cdp의 재생버튼을 눌렀습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들키게 될 시 무사하지 못할 위험을 뒤로한 채 음악을 들은 미친놈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음악을 듣기 위해 수많은 일탈들을 했는데, 그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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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프레스좋아함님 포함 3명이 추천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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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음악에 대한 목마름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미 있는 경험담 잘보았습니다.

05:50
21.01.11.
profile image 2등

거친 군생활의 음감 라이프는 마치 야생에서 살아남는 생존기 같네요. ㅎㅎ

10:42
21.01.11.
3등

부대 특성상 외부매체 반입 불가 방침이 더욱 빡셌었는데, 시스템쪽으로 연계하던 미군들과 일하던 통역병과 친해져서 어둠의 경로로 음악파일 소스를 보내줬고, 야간 근무때마다 Windows Media Player로 졸고 잠자던 간부들 사이에서 음악 들으며 밤을 지새곤 했네요ㅋㅋ 가끔 시스템 사무실에 놀러가서 햄버거와 맥주도 먹고.. 추억이네요 허허

16:37
21.01.12.
profile image
hankey
카투사셨나요?
육/공군은 상황근무(근무하시던 곳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때 공군 자료 휴머니스트라는 커뮤니티가 있어서  육군은 주로 몰래 이용했었죠ㅎ (트래픽 때문에 나중에는 육군은 이용이 제한되었지만요)

상황병일 때, 윈도우에 기본으로 깔린 kalimba 외 2곡조차도 감사하게 들었습니닼ㅋㅋ 보안되어야 하는 컴퓨터에서 나오는 음악에 간부가 놀라서 혼나긴 했지만요
22:47
21.01.12.
무라카미
음.. 정보관련 기밀부대인데다 여기도 한국사이트라 명칭은 말할 수 없지만, 육해공해병대 다 같이 생활하던 부대였습니다ㅎ 면회도 안되고 부대위치도 기밀이었던 터라 완전 봉쇄된 느낌이었지만 전산체계와 레이더, 정찰기 연계 등으로 미군이랑 연계하던 터라 그나마 숨 쉴 틈이 있었죠ㅎ
23:32
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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