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물건.
다들 음향기기 접하시면서 하나쯤 충격을 가져다 준 물건들이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제 경우에도 몇몇 기기들이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극히 최근으로 치면 64오디오 U12t 가 속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녀석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청음했을 때에 충격적이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녀석입니다.
젠하이저 헤드폰의 여러 의미에서 끝판왕이었던 오르페우스(HE90, 옆은 전용 앰프 HEV90) 입니다.
현재는 HE-1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사실 디자인은 얘가 더 마음에 들긴 합니다.
(어차피 둘 다 구매가 불가능한 물건이니)
이게 2011년 연말에 국내에서 청음샵들을 통해서 청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본 건 혜화역 이어폰샵에서였는데, 여기서는 그냥 구경만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이 가게 가 보셨던 분은 아시겠지만 청음샵인데도 엄청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아서
얘를 듣기에는 상성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청음할 수 있는 디바이스도 옆에 물린 CDP(얜 사진이 없군요..) 로만 가능했습니다.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구경했던 터라 제대로 들어 볼 준비도 안 되어서 그냥저냥 보고만 왔습니다.
그러다가 커뮤니티 눈팅을 하다 보니 여의도 스마트오디오 샵에도 들어온다고 나왔습니다.
(여기가 현재의 압구정 소리샵/셰에라자드의 전신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실수하지 않으려고 미리 전화해서 시간 확인하고 CD 챙겨서 준비하고 갔습니다.
원래는 청음회를 따로 열어서 청음하는 형태로 진행한다는데,
우연히도 비는 시간이 있어서 청음회와는 관계없이 단독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절부터 이 가게는 청음 환경을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일단 실내도 조용하고, 디바이스도 네임의 오디오 시스템을 물려 놓았습니다.
아이패드에서 선택도 가능했었고 CD를 통해서도 청음이 가능하게 잘 만들었더군요.
(나중에 뒤져 보니 디바이스 연결에 사용했던 케이블도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일단은 비치된 디바이스 음원을 먼저 들어봤는데,
영 알고 있는 곡도 없고 해서 그냥 가져 간 일본 음악 CD를 넣고 돌렸습니다.
(클래식은 통 관심이 없어서..)
보통은 밸런스가 마음에 드나 안 드나, 표현력은 어떤가를 듣는데
이 녀석은 그런 걸 다 무시하고 자연스러운 소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벌써 10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제일 잘 들어맞는 물건이었습니다.
눈 감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작은 콘서트 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오래 들어도 자극적이지 않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점에서 정말 좋았습니다.
<한정판인 데다가 가격이 안 편하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이 대단한 물건을 아무 방해도 안 받고 1시간 동안 청음할 수 있었던 게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청음을 하면서 샵에서 청음회에 온 사람들에게 줬던 젠하이저 하드커버 노트를 주셔서 감사히 받았습니다.
이 노트도 받고 나서 전 페이지 다 채울 때까지 열심히 썼었습니다.
(지금도 책 보관한 데 찾아보면 나오긴 할 건데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제 음감 생활에서는 이걸 뛰어넘을 일은 현재까지는 없을 듯합니다.
물론 아직 못 들어 본 초고가 물건들도 (HE=1도 그렇고) 엄청나게 많지만,
보통의 짧고 바쁘게 듣는 게 아닌 한 기기를 시간 단위로 들어 볼 기회는 정말 드문 기회일 테니
이걸 뛰어넘는 사건이 발생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사진으로만 봐도 그때의 추억과 감동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댓글 20
댓글 쓰기(매물이 뜬다고 해도 기본이 중형차 한 대 값이니..)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제일 잘 어울리는 물건입니다..;;
그냥 듣다 보면 넋 놓고 듣게 되더군요..
이제는 연식이 오래 되서 정상 매물 찾는 것도 정말 어려울 듯합니다.
오르페우스 쩝.... 한번 듣기라도 하고싶네요 ㅎㅎㅎ
거의 환상종이 되었습니다.. orz
이젠 어디 실매물 있는 거 물어오지 않으면 듣기 힘들 것 같습니다.. orz
전 로또 당첨되도 HE-1은 무서워서 못 지를 것 같습니다.. orz
꼭 한 번 들어볼만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기회도 거의 없을 듯합니다..;;
현 세대의 HE-1은 얘랑 비교하면 소리가 어떨지 궁금하더군요.
오르페우스와 비슷할지 아닐지도 모르겠고요.
저는 오르페우스는 정전형이건 뭐건 그런 것 자체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드라이버에서 나는 소리라는 느낌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젠하이저를 극도로 싫어하던 시절에 들어봤지만 정말 소리 좋았던 기억입니다.
영롱하긴 하네요.. 진짜 궁금..
(가격은 기겁을 할 정도이지만..)
오르페우스 못지 않은 영롱한 비주얼의 연출이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합니다.
다만 소리는 넘사벽... ㅠ.ㅠㅋ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