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2000 재 입수
안녕하세유.
alpine-snow 예유.
2006년 10월 13일, 군대 전역하는 날 귀가길에 헤드폰을 사러 용산전자상가에 들렀다가
어느 청음샾(이후 제가 거기서 반 년간 근무함... ㅋㅋㅋ)에서 CD2000 중고를 우연히 발견,
아무리 들어봐도 청음용 새 헤드폰들보다 더 편안하게 들리는 마법에 걸렸었습니다.
박스도 없는 물건을 시커먼 비닐봉지에 넣어서 쭐래줄래 들고 귀가했지요.
그 날의 기억은 생생한데, 이제 되돌아보니 무척 옛날 일입니다.
동생이 저를 픽업하러 타고 왔던 차가 당시로서도 12년된 대우 프린스였으니까요.
그 날 저녁에 다시 나가서, 같이 전역한 동기와 먼저 전역한 선임들과 모여서 새벽까지
아주 거하게 쫑파티를 하곤 다음 날 아침 지하철 첫 차를 타고 귀가했었습니다.
하여간...
그 날 구해온 CD2000은 불과 반 년만인가 델리커시를 돌렸다가 맛탱이가 가버렸었고,
되살리려고 별 짓을 다 해도 안 되어서 억지로 억지로 2년여인가 쓰다가 폐기했었습니다.
성능이 좋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았지만, 기본기는 그래도 잡혀 있는 물건이었고
중고 매물이 거의 없다시피 한 물건이라 늘 아쉬움이 남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이젠 올드 폰의 대열에 끼게 되었고, 이젠 매물이 있어도 부르는게 값이죠.
그나마 구할 수 있는 해외 매물들의 가격은 아주 먼 나라로...
다행히, 국내의 네임드 헤드파일 분께서 방출하시려던 것을 냉큼 집었습니다.
직접 뵈어서 대화도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거주지가 너무 떨어져 있고 저도 시간이 없고...
비대면 거래로 이루어졌습니다.
무려 십몇년만에 다시 만나는 CD2000.
너무나도 소중했던 첫 CD2000을 망가뜨린 이후
두 번 다시 그 빌어먹을 저주와도 같은 자장제거 트랙 따위 재생은 없습니다.
다시 들어보니, 예전의 그 느낌 그대로네요.
E888 헤드폰 버전 + 청감상 드라이버 뻣뻣하기로는 W100 수준.
구동 측면을 거론하자면 말이 많아지겠지만, 일단 CD3000보다 쉽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드라이버의 컨디션이 좋다고 느껴지고, 그만큼 좀 더 풀릴 여지가 있다고 느껴지는데...
젊었을 때처럼 시간을 들여서 인위적인 번인을 하기는 어려우니 시간이 좀 걸릴 듯 합니다.
좋아했던 헤드폰을 다시 접할 수 있게 해주신 anisound님께 감사드리며, 잘 쓰겠습니다.
십몇년의 기다림이었던 만큼 앞으로 계속 함께 하려 합니다.
메카노를 얼른 들어보았지만, 역시나 CD2000은 의외로 착색이 그다지 없는 편입니다.
심쿵하는 여성 보컬을 들으려면 역시 무조건 CD3000이라야 해요.
P.S. 동봉해주신 블루택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D1001에 부틸 방음패드를 붙이려다 꺼림찍해서 말았는데, 이걸 붙여 써야겠어요.
댓글 17
댓글 쓰기선풍기와 눈 내리던 밤...
상태 정말 좋아보입니다. 모델명에 7,5, 또는 ES 포함되어 있는 시커먼 90년대 소니 거치형 시디피 내장 헤드폰단자에 꽂아서 들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침만 줄줄 흘립니다. 오랫동안 아껴주세요!
감사합니다.
헤드폰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한데, 얘는 꼭 갖고 가야겠더군요.
성능이야 더 좋은 물건들이 즐비하지만, 저는 이게 그냥 편하네요.
20년 세월의 중중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민트급이라고 할만한 상태이지만,
하우징에 부분적으로 덴트가 좀 있습니다.
알로이 합금이라 아무렇게나 펴기는 어려울 듯 하고,
수입차 전문 덴트집에 맡겨서 펼까 생각 중입니다.
알로이 합금은 잘못 건드리면 표면이 터지거든요.
언제 한번 뵙겠습니다..
오우... 처음보는 헤드폰인데 정말 멋지군요... 들어보고 싶은 헤드폰이네요 ㅎㅎㅎㅎ
CD2000은 우롱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나왔던 물건인데, 당시에는 돈 값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인상으로 판단을 하는데, 이 물건은 20만원짜리 주제에 박스도 아닌 저가 헤드폰 마냥 투명 PET 팩에 담겨있었고, 그걸 갓 뜯었을 때의 소리는 가격이 아닌 포장 수준에 걸맞게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헤드폰은 번인이 되더라도 소리가 좀 더 트인다는 정도이지 확 변하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물기 때문에 누구든지 좋다고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단종된지 한참 지난 후에야 어느 정도 길이 들면서 일부 유저들에 의해 들을만하다는 정도로 살짝 알려졌지, 재조명까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도 측정 결과가 상당히 양호하다는 자료가 올라오면서 살짝 관심을 받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인 듯 하네요.
솔직히 성능이 아주 좋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희뿌옇고 텁텁한 음색에 해상력이 그리 좋은지는 모르겠고, 청감상 대역폭도 넓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길들이기에 따라 HD650 정도와는 비교해도 그다지 꿀리지 않는 면모도 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급이되 취향에 따라 선택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20년 전에 이 소릴 했으면 동네북 되었을 겁니다. 참 재밌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HD650과 CD2000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대체재로 HD660S를 추천합니다.
저는 당시 우롱님 또래였어서 그런지 이 물건이 낡은 모델이라는 체감이 잘 안 들었는데, 되돌아보니 고생대 화석으로 남아있을 물건이 살아서 튀어나온 격이네요.
...살다 보니, 청소년기부터의 기억은 항상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합니다.
우롱님께서 지금의 제 나이가 되시면 저는 환갑을 앞둔 할배가 되어있을 거고... 그 때 지금의 우롱님 또래 아이들이 요즘 나오는 헤드폰들 얘길 들으면 완전 신기해하겠지요. ㅋㅋㅋ 세월이란게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저랑 나이 평균치로 트레이드 하시면 안 될까요?! ㅋㅋㅋ;;;
청소년기에 상상하던 것과 실제로 겪어본 것은 너무나도 다르네요.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일단 중년에 접어드니 상념이 많아지는군요. ㅡ,.ㅡ;; 옛날을 많이 그리워합니다.
cd2000 페루아 님께 듣고 처음에는 음.. 밝은가 했는데, 어느 순간 cd780이 제 손에..
대역밸런스로 보면 어떨지 몰라도 청감상으로는 밝은 듯 어두움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CD시리즈가 DF타겟과 거의 일치하는데, 제가 요즘 상당히 어둡게 듣습니다
mx100만 하더라도 DF타겟에 비하면 상당히 어두운 편이니까요.
공교롭게도 지금 S9pro에 CD780 낮은 볼륨으로 듣고있는데 별로 밝다는 인상은 아니네요.
테스트할 때는 빠른 판단을 위해 음압을 상당히 높히다보니 발생하는 괴리라 해야할지.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선풍기 탈탈 도는 새벽 눈 내리던 밤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