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파이 연대기 ㅎㅎㅎ (2003~2021) 스압 주의
안녕하세요.
alpine-snow 입니다.
아래에 이어서 올립니다.
[2003~2004.10] - 요 사이의 기억들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퉁칩니다.
Beyerdynamic DT231 : 서울대입구 AVACorp(現 헤드폰샾)에서 6.?만원에 구매.
- 신품일 때는 좀 답답함. 그냥 참고 쓰거나, 돈 날릴 각오하고 쎄게 번인하면 공간감이 꽤 넓어짐.
번인으로 소리 안 변한다는 분들은 여전히 똑같네 하시긴 한데, 공간감 넓어진거 못 느낌???
Philips SBC-HE910 : 이거 좀 더 전에 샀던 건데 까먹음. HP910의 이어폰 버전이래도 믿을 디자인.
- 소리도 HP910과 비슷. 빼박 자동줄감개 케이블 때문에 오래 쓸 수가 없었음.
Philips SBC-HP890 : CD2000보다 낫다는 평에 혹해서 구매했다가 대실망.
- 이게 CD2000급이면 HD600도 이 언저리 레벨이라는 건데, 절대 말도 안 된다고 장담함.
대역밸런스만 약한 V자 느낌의 웜틸트 스타일로 잘 다려놓은 전형적인 저가형 헤드폰.
거치대 끼워줄 비용으로 부실한 배플과 하우징을 훨씬 보강했어야 했다고 생각함.
거치대가 헤드폰보다 완성도가 더 높았음. 거치대를 사니 헤드폰이 딸려온 느낌.
Sony MDR-CD580 : 이번엔 신품으로 구매해봄. 서울 용산 조은폰에서 6.8만원이었나? ㅡㅡ?에 구매.
- 신품 커넥터 불량으로 단자 허리가 끊어져 PC 내장 사운드카드 잭 안에 딸려들어감.
헤드폰이랑 PC 메인보드 뜯어서 가져갔던 골 때리는 헤프닝이 있었음.
박스에 그래도 HiFi라고 써있는 물건이니 무시하면 곤란.
상급 CD780과 CD2000은 싸구려 헤드폰처럼 PET 포장인데 얘는 그래도 박스임.
Sony MDR-E931 : 838급의 희안한 변종이 나왔었음. 838 + MX400 느낌이었음. 사진은 디카로 직촬.
[2004.10~]
군 입대
[2005]
군 복무
[~2006.10]
관물대 아래에 숨음
[2006.10~]
군 전역.
Sony MDR-CD2000 : 전역하던 날, 귀가 길에 조은폰에 들러 중고 10만원에 업어옴.
- 신품을 사나 중고를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오나 거기서 거기.(신품 패키지가 형편없어서)
<직촬사진>
[2007]
Grado SR80 : 그라도 펀칭이 그리워서 샀는데 좌우밸런스 불량. A/S 불가. 이 때부터 천조국 물건과는
완전히 담을 쌓았음. 초도 불량인데 배째라가 말이 되냐!!! 산업폐기물이지!!!
납땜 인두로 진동판을 사정없이 지져버린 뒤 폐기.
나도 헤드폰 회사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는 빌드퀄리티.
[2008]
SR80 때문에 짜증나서 헤드파이 안 함.
청음매장 알바생으로서 근무.
처음으로 커뮤니티 정모도 주최해보고, 회원 분과 사우나 미팅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함.
[2009]
공부나 하자.
[2010]
SR80 다시 사면 불량 없나?
[2011]
취업 준비 하느라 정신 없음.
취업하면서 귀향함.(부경 지역)
[2012]
중고차 사서 수리비 대느라 정신 없음. 스탁스 오메가2 두 대분 비용 날라감.
멘탈 정상 아님.
[2013]
뒤늦은 첫 연애 시작.
헤드파이 할 정신 없었음.
Men's Box라는 것을 처음 처절하게 체감함. 금수저 집안과의 끝없는 비교를 체험함.
[2014]
뒤늦은 첫 연애 실패로 좌절. 인생 포기하겠다고 마음 먹고 호숫가로 풀스피드 드라이브.
신고 접수로 그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타이어 태워가며 쫓아오신 경찰관님 덕분에 생존.
Sennheiser HD650 : 마지막 남아있던 헤드파일의 혼일까. 나중을 생각하여 확보해두자며 지름.
[2015]
첫 연애 실패에 따른 자책감으로 헤드파이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냄.
남자는 집을 가져가야 하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돈을 모아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2016]
소개팅 연속 실패와 아버지의 말기 암 투병에 따른 자책감으로 헤드파이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냄.
[2017]
AKG K501 : 정말 어렵게 구함. 두 번 다시 구할 자신 없음.
[2018]
소개팅 연속 실패, 아버지의 말기 암 투병 및 소천으로 천하의 죄인처럼 기 죽어서 지냄.
Sony MDR-CD900ST : 이 와중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성이 발동함. 기어이 민트급 중고 확보.
Sony MDR-V700 : 2000년, 서울 압구정 소니스타일 매장에서 들어본 기억에 대한 그리움으로 중고 구매.
[2019]
소개팅 연속 실패. 질문 단골 메뉴(오로지 돈)를 알고 나서는 달관 시작.
우리 시대에는 인연 맺을만한 멀쩡한 사람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게 됨.
Etymotic Research ER-4S :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걸 너무 늦게 구함.
[2020]
적당히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음.
[2021]
나에게 주어진 삶, 사명으로서 받아들이기로 함.
Denon AH-D1001 : 이걸 가장 먼저 접했다면 헤드파이 일찌감치 종결했을 듯.
Sony MDR-CD2000 : 첫 CD2000은 오래 전 고장 폐기로, 추억 보정에 따른 망설임 없는 급 지름.
굵직굴직하게 기억나는 것들 위주로 채워봤습니다.
작성하다 보니 뭔가 또 생각나는게 엄청나게 많은데, 다 채우는 건 좀 그렇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 헤드파일 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저는 남자로서의 사명을 포기하는게 익숙치 않은 세대이긴 합니다만 ㅡㅡ;;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행복입니다.
예전에 몸 담았던 자동차 동호회의 대표님께서 최근 이런 말씀을 남기셨더군요.
"80~90살까지 이어지는 인생에서, 고작 40~50살에 좋아하는 걸 포기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제 삶이 사실 좀 그랬습니다.
20대에는 죄다 싸구려만 사다가 모딩하다가 날려먹고 또 사는 반복이었는데, 그게 낭비였죠.
그나마 30대에 접어들어서는 그토록 좋아하던 것도 주위 눈치를 보며 지레 먼저 포기하기 시작.
남성이라는 이유로 짊어지워지는 의무감에 스스로 짓눌려 아무 것도 안 하려 했습니다.
큰 맘 먹고 HD650 신품 구매한 것 외에는 그냥 갖고 있던 걸로 쓰거나 어쩌다 중고로 하나씩
장만하는 정도.
그런데, 반드시 그럴 필요 없어요.
개개인의 행복 추구는 그 누구도 질타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한 지출을 해서는 안 될 노릇이지만,
지금 이 때가 아니면 힘들다 싶으면 갖고 싶은 것도 소소하게는 갖추세요.
다른 쓸데없는 지출 줄여서 푼돈 모으면 하나씩 살만은 합니다.
그나마도 나이 들면 그렇게라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
저도 어렴풋이 그런 걸 느끼면서 최근에는 하나씩 무의식간에 장만해온 것 같습니다.
어차피 헤드파이의 목적은 나 자신의 행복입니다.
영디비의 모든 회원 분들의 행복한 뮤직 라이프를 응원합니다!! ㅋ
댓글 19
댓글 쓰기느껴지는 글이네요!
저는 제 개인 행복과 가족의 행복을
적당히 잘 버무려서 살고 있긴 합니다. ㅎㅎ
늘 행복하시길 기원 합니다. :)
마음의 여유를 갖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나씩 즐기며 사는게 가장 무난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입니다.
가족 분들과 함께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부지런한게 아니라, 남는 시간엔 할 일이 없는 거죠.
좋은 일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당장은 빡빡해도 뭔가로 바쁜게 좋다고 봅니다.
세상에 왜 나왔는가 한참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내가 행복하고 의미를 스스로 찾으면 되는 것 같더라고요ㅎㅎ 그런 점에서 음감이 행복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취미여서 좋아요. 회원님의 행복한 음감 라이프 응원합니다
요새 20대 남자 분들이 맘고생을 심하게 하시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해야 할 일은 응당 하면서 살되, 강요받은 의무감만으로 살지는 않았으면 싶습니다.
제가 20대일 땐, 비싼 것 단 하나 사는게 두려워서 싸구려만 전전하며 더 낭비했고
30대 초반에는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 하면서 정말 칙칙하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남은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30대 후반 들어서 조금씩 여유를 찾아왔지만, 젊었을 때 소신있게 다양한 경험들을
확실하게 해오신 분들보다 여러 모로 부족한 점들이 많네요.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고, 그건 혼자 살아도 마찬가지죠.
그래도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위해 일을 더 열심히 하는 등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면 적당한 선에서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헤드파이 하시는 분들도 과소비가 아닌 한, 너무 배덕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쉽게도 보란 듯이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살지는 못한 편이지만 다양하게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 말씀이 아주 최근에야 와닿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인색했던 것 같고.. 나에게 투자해야 삶에 이벤트가 생기고 의미가 생기는구나를 이제야 느낍니다. 지금은 좋아하는 것 큰맘 먹고 사보기도 하고 새로운 짓도 별여보고ㅋㅋ 피해주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엉뚱하고 재밌게 지내고 싶어요
앞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고 계신 분의 글을 읽으면 재밌어요. 그래서.. w100의 사용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뭐가 될지는 몰라도, 생각하며 살 여유가 없어지는 건 너무 싫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려면 그런 것도 사치겠지만, 생각의 폭이 좁아지면 역으로 그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서 오판하게 되기도 하더군요.
연애 실패에 결혼도 물 건너가면서 좌절도 했지만, 이 또한 제 삶이죠.
오히려 요즘 같은 양성 갈등이 심해진 시기에, 남들만큼 연애하고 결혼했다면
가정에서 오히려 더 많이 소모되면서 더 불행했을 것 같습니다. 꿈 깨서 다행이랄지.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게 가장 큰 불행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기혼자 분들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도록 노력하고...
독신이신 분들은 그 또한 또다른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보듬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헤드파이는 덜 비싸니 과하지만 않으면 사색하기에 아주 좋은 취미라고 확신합니다.
외장형 디지털 소스 하나 지르실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Tone2? m900?
인생은 계속되니까요!
역시, m900을 구하게 되면 그제서야 AT-HA20이 퇴역을 할 듯 합니다.
한편의 에세이를 읽는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인생이야기와 그리고 헤드폰들 감사합니다.
이런 멋진 글을 이제야 봤네요.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훈훈한 마무리가 인상적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ㅎㅎ
저도 헤드파이를 언제까지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접점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CD580 박스가 CD2000보다 좋아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