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o-technica ATH-PRO5 MOD

방치 차량의 트렁크에서 썩으며 곰팡이 버섯이 자라던 프로5 입니다. 구출한 뒤 깨끗이 닦고 소독한 뒤 이어패드를 순정 온이어 타입에서 어라운드이어 타입으로 바꾼 뒤 사용시간이 다시 무지막지하게 길어지며 영광을 되찾은 헤드폰입니다.

갖고 있는 이헤폰들 중 신품 구매로는 가장 오래된 것인데, 벌써 구하기 어려워진 세월이 되도록 쓰고 있습니다. 번인도 굉장히 오래 했고 실 사용시간도 엄청 깁니다. 어찌보면 W100보다도 더 골골거려야 합니다. 그러나 HD650보다도 쌩쌩합니다.

원본 무려 나카미치의 SP-K300 헤드폰을 감히 오테가 꿀꺽 하고는 말 그대로 토시만 바꿔서 재발매한 물건입니다.

20대 중후반에 사서 말 그대로 청춘을 함께 했네요. 첫 제대로 된 신품 구매와 첫 제대로 된 번인, 첫 제대로 된 튜닝, 첫 정규직 취업 후 음악과 함께 하는 저녁을 책임져주었고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친구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와 그 길로 친동생에게 갔다가 행방을 알 수 없어져 잃어버린 줄 알고 잊고 지내다 이따금 생각이 났던 물건이었습니다. 동생 차 트렁크에서 오랜 세월을 굴러다니다가 다시 빛을 보았을 땐, 얘가 생명체였다면 제게 얼마나 쌍욕을 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 부산 벙개에서 선라이즈님께서 들으셨을 때 평이 나쁘지 않아 대단히 황송스러운 녀석입니다. 이젠 12년이 넘은 신품가 7만원대의 아무 것도 아닌 물건인데, 이젠 이 녀석의 금전적인 가치는 거의 소멸해버렸지만 저와 기쁨, 슬픔, 행복, 좌절의 세월을 함께해온 저만의 가치가 신품 가격 따위는 아득히 넘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버를 HFI-2200 것으로 바꿔달려다가 선라이즈님의 만류에 그대로 두고 있는데, 듣다 보니 그게 옳을 것 같아 그대로 두기로 하고 계속 쓰고 있습니다.

서울 살 적에 친해졌었던 어느 감 좋은 헤드파일 지인에게는 LG G5 하이파이모듈 쿼드댁 출력(배경 싹둑 잘라드시던 그 분)에서 MDR-CD900과의 비교시 후달리는 해상력부터가 처절히 발린다며 K.O패 판정을 받았었던 이력도 있지요.

나무위키에서는 이걸 착색이 적다고 하던데... 오테 특유의 고역대 착색은 없지만 중역대는 코맹맹이 착색이 좀 심한 편입니다. 중역대 가운데가 봉긋하게 솟고 높은 고역은 푹 꺼집니다. 발매 당시 국내에서는 저음 붕붕을 유치한 셋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반면 고음이 좋다 하면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도 있었죠. 그래서 그 당시에는 하우징에 솜을 쑤셔박는 튜닝도 시도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오히려 저역은 대충 적당히 있는 편이되 극저역이 부족한게 여전한 아쉬움입니다. 물론 제 것은 붕붕거리는 것보다도 하울링을 잡기 위해 상공양행(ㅋㅋㅋ) 멸균 탈지면을 쿡쿡 쑤셔박아넣은 상태입니다. 뭐 이대로도 좋습니다. 배경음 착색이 참 재밌습니다. 낮은 성능에 비해서는 음색이 다채로운 편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