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고 다니는 것들
아래 게시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0db.co.kr/FREE/2943
유선 이어폰 5개, BT DAC 1개, 무선 이어폰 1개
지난 알리 세일에 이어폰 2개를 추가로 구입헀습니다.
이전에 쓰던 것들을 그대로 대체할 만큼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개성과 재미가 있으므로 가지고 다니며 씁니다.
다만 이전의 4개에 2개를 추가해 6개를 들고다니기엔 좀 불편해 1개는 포기하고 5개를 지니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외된 것은 FDX1인데, 음질 성능이 빠져서라기 보다는 형상과 무게 덕분에 걸어다니며 들으면 신체 잡음이 거슬리고 케이블 호환성이 떨어지는 등 실용적인 이유에서 예비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데일리 유선 이어폰 5개가 모두 차이파이가 되었네요.
1. 탕주 x HBB 측천무후 헤이데이 에디션 TANGZU x HBB Zetian Wu Heyday Edition
평판자력형 헤드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평판자력형 이어폰은 궁금하면서도 안 궁금했는데, 까도 작접 들어보고 까자 하다가 그 중 외관 디자인과 FR 특성이 취향에 가까워 보여 구입해 봤습니다.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평판형 헤드폰과 소리 내기가 비슷합니다. 빠르게 나타나고 빠르게 사라집니다.
지난 번에 FDX1의 빠름을 이야기하며 카타나로 베어낸 것과 같은 윤곽을 이야기했는데, 그 빠름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평판형의 빠름은 레이저로 태우는 것과 같은 빠름이며 그 윤곽은 예리하기보다 부드럽습니다. 선 보다는 점의 느낌, 그러니까 스푸마토나 점묘법 혹은 파스텔로 그려진 그림을 연상케도 합니다.
빠른데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기까지 하면 좋은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늘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땅히 지속되리라 기대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소리가 감쇠하면 울림이 부족한, 앙상한 소리가 됩니다. 저역의 경우 더욱 그렇죠. 이렇듯 빨리 사그라드는 저역을 어떻게 보상할지가 평판형의 지상과제라고 생각합니다.
7Hz 타임리스 7Hz Timeless나 렛슈어 S12 Letshuoer S12처럼 미드베이스를 두텁게 가져가도 보고, 인이어피델리티 In-Ear Fidelity의 크리나클 crinacle이 콜라보한 7Hz 디오코 7Hz Dioko처럼 깔끔하게 내려놓기도 해 보지만 다들 여전히 저역의 텍스처가 부족하고 허당이라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고역은 어떨까요. 빠른만큼 해상도가 높지만 또 너무 밝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앙상하게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반짝임을 추가하다보니 시점과 관점에 따라 간이 안 맞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측천무후 헤이데이의 저역은 얼핏 적절하게 들리지만 역시 허무하게 빨리 감쇠하는 경향이 있으며, 고역은 다른 평판형에 비해 보수적으로 조정된 탓에 밝게 들리지는 않지만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평판형은 임피던스 변화에 따른 FR 변화가 적습니다.
따라서 케이블에 따른 음색 변화도 좀 더 미묘하지만, 마냥 같지는 않습니다.
NiceHCK 블랙캣 Nice HCK BlackCat은 NiceHCK의 저가 케이블 중 하나로, 20불 미만의 가격으로 구입 가능하며, 미국산 오일 함침含浸 아연 구리 합금 선재를 쓰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개별 도체를 기름으로 코팅해 리츠Litz선처럼 표피효과를 줄이는 것이 목적으로 예상하는데, 빈티지 오디오 쪽에서 가끔 사용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아마 미국산이라는 것도 본디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을 가져왔을 것 같고. 거기에 아연 합금이 베이스니 지향성이 대체로 빈티지 - 아날로그일 것 같죠.
일단 들어보면 '턱' 하는 누르는 낮은 저역의 존재감이 먼저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저역이 해상도가 낮다고 해야할까, 손으로 눌러 뭉갠 듯 질감이 독특합니다. 오일 함침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이겠지만 기름 먹은 종이 같은 느낌도 들고요. 낮은 저역이 강세를 보이면 소위 말하는 댐핑감이 커지는 게 보통인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고역은 대체로 예상한 것과 같아서 좀 먹먹한 초고역과 아연의 무르고 새된 고역이긴 한데 그게 또 기름으로 코팅한 듯 미끄덩하게 넘어갑니다. 어 이상하죠. 진짜 이상합니다.
비오는 날 주유소의 검은 웅덩이에 고인 기름 뜬 빗물 같아요. 뭔 소린지 모르겠죠. 저도 그렇습니다.
블랫캣이라는 이름, 오일함침 아연합금이라는 정보, 그리고 매끈한 검정색 외관이 주는 선입견에서 오는 연상 작용이겠지만 이런 것에 넘어가 주는 것도 애호가로서 가질 수 있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최근 구입한 많은 NiceHCK의 케이블들이 그렇듯 블랙캣은 일반적인 하이파이 지향의 케이블이 아닙니다. 정보 전달의 투명성 보다는 하드웨어 EQ에 가까운 맛내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이걸 저 측천무후 헤이데이 에디션이랑 붙여 어떻게 되었을까요. 꽤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스텔로 그린 그림을 손으로 문지른 것 같아요. 빠르게 사라지려고 하는 저역을 눌러 번지게 만드는 바람에 깊이가 생기고 너무 잘게 느껴지던 고역에도 윤기가 돌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투명감 있고 요염한 소리가 나게 되었습니다.
예상컨대 비슷한 증상을 느끼는 다른 평판형 이어폰에도 유효한 조합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 TKZK 우라노스 TKZK Ouranos
https://pw.squig.link/?share=Harman_2019v2_Target%2CTKZK_Ouranos%2CTripowin_Olina_SE
SE로 필터 튜닝된 트리포윈 올리나 Tripowin Olina를 쓰며 조금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찬가지로 10mm CNT 드라이버를 써서 하드웨어 포텐셜이 좋아보이고 주파수 응답도 그럴 듯 해 보이게 그리고 있으므로 사 보았습니다. 그러나 직접 들어보니 중역의 두터움 때문일까 소리가 다이나믹하지 않고 재미가 없게 들렸습니다.
이건 또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하고 이것 저것 조합해 보다 찾은 것이 루나샵 Lunashops의 순은 + 은도금 그래핀 OCC 케이블.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은과 그래핀이 눈에 띄죠. 그래핀 케이블은 루나샵에서만 두 개를 사 봤는데 공통적으로 너무 딱딱하고 음악적이지 못해 어디에도 써먹지 못하던 차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순은이 섞인 케이블은 소란스럽기까지 해 영 못 써먹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이야.
은의 반짝임으로 무딘 중역을 상쇄하고 그래핀의 단호함으로 둔한 다이나믹을 무마한 결과, 부드럽고 다이나믹하며 전망이 좋은 소리를 내게 됩니다. 비세일 기간 기준으로 이어폰 값이 55불, 케이블 값이 40불이니 사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싸고 좋은 게 계속 나오고 있으니 최고 가성비까지는 보장할 수 없겠지만요.
3. 트리포윈 X HBB 올리나 (탠치짐 필터 개조) TRIPOWIN X HBB Olina (Tanchjim Filter Mod.)
이전 게시글에서 뻣뻣한 소리를 NiceHCK 실버캣 SilverCat으로 개선했다고 했죠. 그리고 실버캣은 짜임이 풀어지는 단점이 있다고도요.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이렇습니다.
이쯤 되니 대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집에 있던 케이블들을 다시 돌려가며 듣다가 XINHS의 4심 단결정 리츠선이 제법 잘 어울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20불 미만에 팔리는 비교적 저가의 케이블로, 굵지 않은 케이블인만큼 풍부함 보다는 깔끔함, 경쾌함이 기본 속성인데, 거기에 고역 롤오프가 좀 이르게 시작하고 전체적인 중심이 좀 낮아지는 편입니다.
외관도 소리처럼 깔끔하고 가볍지만 마땅한 쓰임은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또 이렇게 제 몫을 하게 되네요.
올리나(SE)와 조합하니 그저 톤을 적당히 맞추는 게 아니라 무대 좌우 끝을 당겨 머리를 중심으로 반원형의 전망을 만들어 줍니다. 전후 레이어를 나눠 입체감을 주는 실버캣과는 마치 3D 스크린과 VR처럼 다른 방식의 프리젠테이션인데, 거기에 저역의 무게감이 조금 줄어든 대신 사뿐사뿐한 풋스텝이 더해져 새로운 즐거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모두 직접 구입해 사용한 소감입니다.
댓글 11
댓글 쓰기해외에서 평판이 좋은 숨은 보석
우라노스랑 올리나가 탐나네요.
흑천은... 보유중인데
전혀 안 사용하게 되네요.
케이블이 진짜 에러인듯 합니다.
교체형 단자라고 신나서 샀었는데...ㅠ.ㅠ
아까 블랙캣 단자교체했는데 이상하게 플럭스 기름이 많이나오는 느낌? 뭔가 있었는데 기름함침이었다니?
오랜만에 이런 엄청난 내공의 글을... 항상 많은 공부가 됩니다. 케이블의 세계는 참 오묘하군요.
저는 함부러 발을 디디기가... ^^;;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감사드립니다.
관심을 가지고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블랙캣 케이블에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범용으로 사용할 케이블은 아니라는 생각에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