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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원점(原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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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관심이 큰 어느 한 분야에 대해서는 그 시작점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음악에 대한 관심의 시작점이 조르주 비제의 음악이었고,

현대적인 팝 음악에 대한 관심의 시작점은 셀린 디옹이었습니다.

어떤 한 계기가 인생을 크게 바꿔놓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셀린 디옹을 처음 접한 날로부터 모든게 바뀌어버렸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변화에 대한 대응이 많이 늦는 편이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것들이 변하는 것에 거부감을 많이 느꼈지요.

즉, 처음 접한 것 그 자체의 성향이 아니라 처음 접한 것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인 성격을 타고났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비제의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접한 이런 류의 음악은 충격이었죠.

1997년 여름, 부모님께서 어딜 나갔다가 카세트 테잎들을 사들고 오셔서는

"시끄러워서 못 듣겠더라"면서 셀린 디옹의 'Falling Into You' 앨범을 제게 주셨었습니다.

습관적으로 테잎을 맨 앞으로 되감기 한 뒤 처음 들린 곡이 이거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중가요로 분류될만한 팝 종류의 음악을 접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예 결이 다르다는 건 단번에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관심이 커져서 동네 음반점에 가서 셀린 디옹 카세트 테잎을 사게 되었지요.

Falling Into You 직전에 나온 영어 앨범입니다.

이건 'The Power of Love'가 수록되었던 앨범의 타이틀 곡인데,

저는 이 곡에서 더 좋은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가사 내용도 그렇고...

Falling Into You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느껴지는 녹음이어서

더더욱 감성적으로 빠져들었던 기억입니다.


같은 앨범에 이런 곡도 실려있었지요.

앨범마다의 성격이 뚜렷했었고, 마치 그 시절의 서양 형님, 누님들의 감성에 젖는 듯한 착각도 들어서

정말 깊게 빠져들었었던 기억입니다.


좀 더 옛날로 가보자 하고 또 그 직전의 앨범을 하나 더 사보았었습니다.

두 번째 영어 앨범인 'Celine Dion'.

한층 더 풋풋한 감성, 그리고 이건 아예 찐 LP 느낌이다 싶을 정도의 아날로그 감성이 한층 짙은 녹음.

가사 내용도 지금 되돌아보면 한층 더 어리고 순수한 느낌입니다.


'If You Could See Me Now'

살짝만 건드려도 툭 하고 펑펑 터질 것만 같은 극도로 섬세한 흐름을 이렇게도 표현했더군요.


한창 빠져서 지냈었는데,1997년 말쯤 되니 새 앨범이 나왔었습니다.

'Let's Talk About Love'

셀린 디옹이 1968년생이니, 무려 만 30세가 되기 전에 나왔었던 앨범입니다.

음반점에서 발견하자마자 바로 사서 들어보았죠.

거의 겨울쯤 사서 들었던 기억인데, Falling Into You 때와는 확 달라진 감성.

온 나라가 외환위기의 된서리를 맞아 처참했던 그 시절,

시대상과는 뭔가 동떨어진,

풍성하고 화려한 겨울 느낌만큼과는 기막히게 맞물려서 굉장히 아스트랄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곡, 'Immortality'

첫 번째 곡에서 보여진 화려한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제목은 사전적 해석보다는 그냥 그 느낌만 안고 듣는 편이 좀 더 와닿았지요.


이 앨범 전반적으로 곡들의 퀄리티가 좋았는데도,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한국에서는 단 한 곡,

이것만 주목받는 현상이 있었지요.

평소 영화 관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셀린 디옹이 이 곡을 노래했다고 해서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를 졸라 함께 'Titanic'을 관람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깝게도, 이 앨범까지를 끝으로 셀린 디옹에 대한 관심이 좀 빨리 식어버렸습니다.

대박을 친 영화 타이틀곡 하나만 너무 뜬 분위기에서 어수선함을 느꼈달까요...

그래도 그 와중에도 못 들어본 앨범들을 더 찾아보곤 했었습니다.


<D'eux ; La Memoire D'abraham>


<D'eux ; Le Ballet>


<Dion Chante Plamondon ; L'Amour Existe Encore>


난데없는 프랑스어 앨범을 발견하곤 질러버렸지요.

그걸 들으며 1998년 말까지의 정말 감수성 풍부한 중학생 시절을 마무리 지었었습니다.


이듬해인 1999년부터는 난데없이 양파 바람이 불어서 빠져들었다가 빠져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클래식과 락, 메탈, J-POP, 저패니메이션 OST, 윤하를 기점으로 피크를 찍고

빡쎈 회사 생활 근 10여년간 꽤나 칙칙한 30대를 보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 나름 열심히 한답시고, 염치 차린다고 제 삶을 완전히 내팽겨쳐버린 채... ㅋ

아니, 정말 아무도 안 알아줘요.

누가 하지 말래도 내 껀 내가 살뜰히 악착같이 챙겨야 해요.

안 그러면 바보 됩니다.

'누칼협? ㅋㅋㅋ'


셀린 디옹에 한창 빠져들었던 시절로부터 이십 몇 년이 지나서 다시 푹 빠져들어보니... ㅎㅎㅎ

두 번 다시 되돌아갈 수 없던 시절에 느꼈었던 감성들을 다시 쥐어올려본 손바닥을 펼쳐보니

그 껍데기들만이 하얀 재가 되어 등 뒤에서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에

제 앞으로 소리 없이 날아가 멀어지는 모습만이 보이는 듯한 기분입니다. ㅋㅋㅋ


하여간...

셀린 디옹의 노래와 찐하게 함께 했던 사춘기 시절이 다시 다가온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

제 자신을 진지하게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신 무라카미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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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letalk idletalk님 포함 7명이 추천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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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셀린디온을 정말 많이 좋아하시나보네요.
글에 정성이 한 가득입니다.
전 중학교때 뭘 하고 살았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ㅋ
입학하고 첫 등교때
진흙이 뭍은 발로 교정에 들어가도 되는지를 망설일때
그 감정과 봄비의 냄새는 선명히 기억을 합니다만
그 뒤로는 어쩐 일인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간간히 파편 같은 기억들 뿐입니다.
08:19
23.07.31.
profile image
alpine-snow 작성자
JNK
저도 옛날 기억들은 파편화 되어있어서... ㅋ
다만 그 시절에 느꼈었던 기분이나 감정, 감각들은 저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네요.
특히 1998년 10월 서울 잠실에서의 기억들이 사춘기 시절 정점이었습니다.

주공아파트가 아직 있던 시절 올림픽로 양쪽의 널찍한 인도에 유난히도 많았던
플라타너스 나뭇잎과 낙엽의 노르스름한 빛깔, 떨어진 열매들이 굴러다니고
그게 사람 발에 밟혀 터지면서 흩날리던 풍경,
잔뜩 떨어진 은행나무 잎들과 여기저기 떨어져 냄새를 풍기던 은행열매들...
옅은 회색과 옅은 주황색 투톤 도색된 시내버스들이 다니던 풍경...
댓글 쓰면서도 그 풍경이 밖에 나가면 바로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인데,
저는 지금 그 곳이 아니고 그 곳의 풍경도 많이 변해버렸네요.
주공 1~4단지가 죄다 재개발로 고층화 되어 하늘을 가린지 10년도 더 지났으니...
5층짜리 주공아파트가 있던 시절엔 하늘이 탁 트여서 정말 보기 좋았었는데...
재개발 이후로는 영 삭막해진 분위기라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사람 많은 동네인데, 거리마다 사람 냄새가 가득하던 시절은 옛날이 되었더군요.

셀린 디옹은 처음에 확 달아오를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최고로 꼽습니다.
섬세함과 다채로움과 파워를 두루 겸비한 점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또 가장 좋아해요.
21:49
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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