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200, 두보 그리고 잡스러운 케이블들
지난 알리 썸머 엔딩 세일 중 두 개 더 주문해 받았습니다.
두 가지 선재를 엮어 만든 이른바 하이브리드 케이블들로, 고른 이유는 예쁘기 때문입니다. 딱히 목적 의식이 있다기보다 적당히 만든 반반 짬짜면 같아 보이지만, 어차피 이전에 산 다른 케이블들도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은 조합에 따른 요행에 가까웠으니 가챠 돌리는 셈 치는 거죠.
1. Simgot EW200 + XINHS 4심 그래핀/7N 하이브리드 케이블
희망에 차 주문한 심갓 EW200이지만 취향보다 밝은 성향의 소리 덕분에 손이 자주 가지는 않았습니다.
딱 요만큼만 진정시키면 좋은 소리가 날 것도 같았는데, 이리저리 시도해 봐도 꼭 맞는 짝을 찾지 못하고 있었죠.
푸른색과 동색의 이 XINHS 케이블은 은,그래핀 도금 동선과 7N 동선을 엮은 것입니다. 실물을 보면 청색은 쨍하고 동색은 핑크빛을 띠고 있어 azzurro e marrone 이런 느낌은 아니고 펑키한 느낌의 색감입니다.
이와 같은 선재 조합이 어쩌다 얻어 걸린 레시피인지는 몰라도 소리가 멀쩡합니다.
빠르고 깔끔하게 디테일을 챙기는 고역이 가장 특기지만, 중역과 저역도 빠지거나 팍팍하지 않습니다. 정돈된 소리지만 여전히 다이나믹합니다. 대역폭이 충분히 넓으면서도 투명합니다. 일반적으로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던 속성들이 절묘하게 공존합니다.
덕분에 EW200의 고민이 제법 해결됩니다. 조금 밝은 고역을 진정시키면서 초고역의 전망을 확보한 후, 디테일을 차근차근 챙깁니다. 저역은 여전히 강력하고 중역은 매끈합니다.
이전에 추천했던 NiceHCK MeetAlice 밋앨리스가 고역을 누르고 NiceHCK RubyCat 루비캣이 고역을 가지치기 하듯 잘라낸다면, 이 케이블은 고역을 잘게 쪼개 들려줍니다. 그 과정에서 청량감이 조금 줄어 들지만, 전체적인 음색을 비롯한 이점이 커 지금껏 시도한 조합 중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2. TANGZU X DIVINUS FUDU verse1 + ivipQ Peacock Green
탕주와 디비누스의 콜라보 제품인 두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2, 4, 8kHz에 솟은 짝수배 피크입니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두보라는 네이밍을 생각하면 자못 시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8kHz 피크가 있지만 2kHz와 4kHz에도 피크가 있는 덕분에 얼렁뚱땅 짝수 배음인 척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때문인지 두보는 2BA 1DD 구성임에도 소위 말하는 BA 팀버 - 홀수 배음 덕분이라고 일컬어지는 - 가 별로 느껴지지 않고 부드러운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BA를 탑재한 것 답지 않게 소리 끝이 무디게 들리는 것은 단점이 됩니다.
https://timmyv.squig.link/?share=Harman_Target,Tangzu_Fudu
ivipQ는 이번에 처음 주문해 본 셀러로, XINHS와 마찬가지로 공장 직영이라고 하는데 다른 데서 본 것도 있고, 둘이 서로 겹치는 것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주문한 케이블은 금,그래핀 도금 동선, 은도금 동선, 은동 합금선 등 혼란하며 Peacock Green 피콕 그린이라는 이름답게 공작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외관은 예쁩니다. 다만 이어후크 처리가 되어있지 않으며 일반 2핀의 경우 극성 표시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점에는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소리는 위의 XINHS 은,그래핀도금 / 7N 동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고역 성장과 디테일 픽업 면에서는 그조차도 상회합니다. 다만 소리 입자가 너무 곱고 덜 투명하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디테일이 최우선이 되는 경우 조합해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역폭 자체가 제한적인 경우 효과가 적겠고, 두보와 같이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려진 경우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보와 조합하면 강력한 저역과 부드러운 웜톤을 유지한 채 디테일을 짚어가며 들려줍니다.
3. TANGZU x HBB Wu Heyday Edition + Lunashops 4심 그래핀 도금 7N 케이블
측천무후 헤이데이 에디션에 NiceHCK 블랙캣을 조합해 쓰고 있었습니다. 오일함침 아연동합금 케이블인 블랙캣은 번진 듯한 저역과 빛이 바랜 듯한 고역이 만나 낡은 소리가 나는 케이블입니다. 둘을 조합했을 때 평판자력 드라이버의 헛헛한 저역에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좋았지만 훅 불면 날아갈 것 겉 같은 고역은 아쉬웠습니다.
최근 찾은 조합은 루나샵의 그래핀/7N OCC 선입니다. 딱딱한 소리로 쓰임을 찾지 못하던 케이블인데 여기 조합하니 결정력이 좋아집니다. 소리의 끝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 역시 그래핀을 쓰는 위 케이블들과도 일맥상통하나, 너무 멀리 가지 않고 또 그만큼 가늘어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그래핀이 쓰인 케이블들은 빠르고 디테일한 소리를 만들어 준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딱딱하고 가는 소리가 될 수 있으므로 적절히 사용해야 할 것 같고요.
위에 소개한 케이블 중에서는 ivipQ > XINHS > 루나샵 순으로 소리 끝이 가늘고, 고역도 더 많이 성장합니다. 반면 맺고 끊는 맛과 깔끔함에서는 역순이 되므로 고려해 고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