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하이델베르크 헤드폰 박람회 후기 (World of Headphones)
지난 토요일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World of Headphones라는 작은 헤드폰 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본래 그 유명한 뮌헨 하이엔드 쇼의 일부였는데, 자체 행사로 독립하고 두 번째 개최더군요.
젠하이저, 베이어다이나믹, AKG, 소니, 오디오테크니카, 그라도 같은 전통있는 근본 헤드폰 제조사…는 참여하지 않은!
신생 하이엔드 브랜드 위주의 행사였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던. ZMF, 댄클락, HEDD의 플래그십 헤드폰들을 자유롭게 청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근처에서 HE90 오르페우스를 들어볼 수 있었기 때문에 200km 거리를 하루 안에 왕복하여 다녀왔습니다.
행사장은 Tankturm이라고 옛날 급수탑을 리모델링한 건물인데, 1층부터 5층까지 올라가는 순서대로 소감을 씁니다. 실제로도 대략 그 순서로 이동하면서 들었으니까요.
현장에 있었지만 음원 선택권이 지나치게 제한된 헤드폰은 제외했습니다. (DCA Corina, RAAL SR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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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eze MM500
오르페우스 듣고 직후에 들었던 몇몇 헤드폰들 중에서 오징어 신세를 면한 첫 번째 헤드폰
구조 설계와 재질 선택이 합리적이고 마감이 깔끔해서 마음에 듭니다.
HEDDphone 1
2보다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크기와 무게는 너무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AMT 드라이버를 써서 얻으려는게 무엇인지, 과연 그럴 가치는 있었는지 납득은 안 갔습니다.
HEDDphone 2
초고도비만이었다가 혹독한 체중 감량으로 중도비만이 된 후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을 보는거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비만인데ㅜㅜ
이렇게까지 해서 AMT 드라이버를 써서 얻으려는게 무엇인지, 과연 그럴 가치는 있었는지 납득은 안 갔습니다. (2)
Final D8000, D8000pro
바로 앞에 X9000이 있다보니 대충 들어서… 조금 먹먹했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연결된 케이블이 굉장히 화려해서 인상깊습니다. 단단한 구조와 전용 스탠드도 멋지고요.
STAX X9000
만듬새가 전작보다 더 정밀하고 재질감도 더 고급스럽습니다.
소리도 흠잡을데 없이 완벽합니다. 산뜻한 봄바람 한 숟가락 얹었네요.
오늘 참가한 업체 중 유일한 근본 브랜드로서 압도적 수준차이로 모든 경쟁자들을 싹 정리해 버립니다.
게이밍 감성의 작명과 보랏빛 아노다이징이 무척 아쉽습니다…
STAX SR009S
이것도 참 좋은 헤드폰인데 X9000들은 직후에 들으니 상대적으로 초라했습니다.
STAX SR007mk2
이어컵과 이어패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게 마음에 안 듭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과거의 저 포함 꽤 많은 분들이 이것때문에 제대로된 청음을 못 했을겁니다. 패드 제대로 돌리고 다시 들어보니 이제는 옛날 헤드폰 티가 납니다. 상자 울리는듯한 소리가 나네요.
STAX L300, L500, L700
람다 시리즈를 두 번 들이고 내쳤었는데, 역시나 제 얼굴형에는 람다 패드가 잘 안 맞는거 같습니다.
DCA Expanse
모범적 톤밸런스의 고성능 오픈형 헤드폰입니다. 아주 좋아요. 왜 인기가 없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슬림한 구조물 설계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사진으로 볼때는 이어컵을 뒤만 고정한게 불안해보였는데 기우였네요.
DCA Stealth
모범적 톤밸런스의 고성능 오픈형 … 소리가 밀폐형에서 나네요? 그럼 밀폐형 못참죠. 이제 이해가 갑니다.
DCA E3
스텔스와는 차이가 컸습니다. 밀폐형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네요.
음향적으로 유익할리가 없는 평면 유리로 드라이버 후면을 막았길래 메타물질이란게 그렇게 대단한가 했는데 약간 실망입니다.
DCA Ether 2
진동판이 이렇게 크고 후면도 확 뚫려있는데 써보니까 개방감이 별로 없고 텁텁했습니다. 댐핑재를 너무 많이 넣은 것인지…
Warwick Acoustics APERIO
스텔스 듣고 나서 대충 들어서… 약간 탁했다는 기억만 남았습니다. 정전형인데… 비싼건데…
Meze Empyrean 1
듣기 좋았습니다. 평판자력형 특유의 어색한 고음 처리가 전혀 없을거 같은 톤밸런스인데 음원에 따라서 가아끔 튀어나옵니다. 우리집 HE-500도 이정도는 했던거 같은데…하는 착각이 잠시 들었습니다만 설사 그렇다고 해봤자 기구적 완성도와 착용감에서 압도적 참패입니다.
아차, 무슨 패드였는지 신경을 못 썼네요. (1)
Meze Empyrean Elite
1보다 더 좋았습니다. 평판형 특유의 고음 음색이 전체 톤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아차, 무슨 패드였는지 신경을 못 썼네요. (2)
Meze Empyrean 2
1보다 별로였습니다.
아차, 무슨 패드였는지 신경을 못 썼네요. (3)
Meze 109pro
의외로 엠피리언 삼형제보다 좋게 들었습니다.
99는 입문기도 아닌 패션 헤드폰 느낌이어서 큰 기대 안했는데 이건 제대로 만든거 같습니다.
ZMF Bokeh
나무는 상급기 못지않게 고급스러운데 길이조절부가 덜 예쁩니다.
좀 많이 동동거리긴 하지만 밀폐형치고 선형성이 뛰어나고 대역폭 끝자락이 자연스러워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ZMF Atrium Closed (이름을 가르쳐주신 연월마호님, 선라이즈님 감사합니다)
둠둠칫칫 흡사 나무로 만든 에어팟 맥스 같았습니다. 어쿠스틱 음악을 들으면 전혀 티가 안나고 좋기만 했습니다.
ZMF Atrium Open
다프트펑크 R.A.M. 앨범에서 죠르지오 모르더의 목이 잠기고 모음이 성문파열음으로 억세게 강조됩니다. 덕분에 악기소리들이 굉장히 엣지감 있게 들렸습니다.
ZMF Verite Open
뭔가 어딘가 잘못된거 같습니다. 정상품(?) 소리는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SPIRIT TORINO Pulsar Aluminium, Superleggera Ragnarr
(사진은 Superleggera Ragnarr)
들으면 들을수록 손해입니다. 쓰고 있으면 아름다운 디자인을 감상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일 비싼 Valkyria Titanium은 눈으로만 열심히 보고 왔습니다.
Abyss Diana MR
음악을 듣지 않아도 기본이 안 됐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이어컵에 관절이 없어요. 이걸로 좋은 소리 들으시는 분들은 선택 받으신 분들입니다.
Austrian Audio Composer
오늘 들었던 다이나믹 헤드폰 중에서 최고입니다. 그러고보니 다이나믹 헤드폰 몇개 없긴 합니다만…
마치 정밀하게 깎은 석고조각 느낌입니다. 해가 떨어지는데 실내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만듬새를 잘 볼 수 없었지만 감촉은 아주 좋았습니다.
RAAL 1995 Immanis & Magna
(사진은 Immanis)
뉴욕 캔잼보다 일주일 앞서, 오늘 이 자리에서 세계최초 일반 공개된 초고가 헤드폰입니다.
소감을 안 남긴 SR1a도 그렇지만… 남들 안 쓰는 리본드라이버를 헤드폰에 써서 얻고자 하는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대한건 아니지만 기구적으로도 결함이 있습니다.
Campfire Audio Trifecta
워낙 악명이 높아서 긴장하고 들었습니다만 생각보다는 괜찮네요. 스피릿 토리노보다는 센스있는 튜닝입니다. 창의력 넘치는 초딩 답안지 짤같은 유쾌함이 있어요. 아차 근데 이거 가격이…
Campfire Audio Solaris Stellar Horizon
정착용이 안 됩니다ㅜㅜ
~~~ 내 마음속의 시상식 ~~~
우승: STAX X9000
공동 2등: DCA 스텔스 & 오스트리안 컴포저
3등 같은 4등상: 메제 109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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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파이를 오래 해왔으면서 부끄럽게도 내 것이 아닌 헤드폰을 짧게 청음해서 올바른 평가를 내려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또 내 것이 되고나면 굳이 평가를 하는 것도 귀찮아졌기 때문에 청음기를 많이 남기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떠나보낸 옛날 기기들에 대해서만 짧게 코멘트한게 전부였던거 같네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에? 거의 처음으로 청음 후기를 남겨보게 됐습니다. 근본 브랜드 제품들은 간간히 들어볼데가 있긴 한데 신생 하이엔드 브랜드를 이렇게 한데 모아서 들어볼 기회는 거의 없다보니 아무 기록을 안 남기고 잊어버리기가 아까워서요.
당연히 제품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 없고, 그렇다고 개인이 지조있게 견지한 주관도 아니고, 심지어 가격을 모르는 헤드폰도 많아서 가성비와도 무관합니다. 그저 순간적인 첫인상에 불과하지요. 나중에 다른데서 다시 들으면 분명 딴소리 할겁니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200키로를 달려서 하이델베르크 시내 구경도 못하고 웬 컴컴한 급수탑 건물에서 네시간 넘게 요상한 헤드폰들을 함께 듣고 감상을 나눠준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여기서 공개적으로 해야겠습니다ㅎㅎㅎ
댓글 30
댓글 쓰기거의 못들어본 제품들입니다만 들어본 것들이 끼어있어서 그 기기에 대한 감상이 제 생각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머지 기기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 분께서 이런 경험을 함께 참여하셨다니 정말 복받으셨습니다.
최고의 기기들을 청음하셨군요. 진심으로 대단히 부럽습니다. 본인은 평생 저런 자리에 단 한 걸음이라도 발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근데 해외의 명성을 보면 Aperio가 1위일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RAAL 헤드폰은 가격에 비해 아쉽습니다
코 앞에서 켄잼을 하는데도 귀찮아서 안갈듯 한 1인입니다.
DD는 아무래도 전통의 강자들이 꽉 잡고 있다보니 그런거 같습니다 ㅎㅎ
멋진 글 잘 봤습니다. :)
아이들톡 님의 후기는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1995도 나왔군요!!!
한국에서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그저 세르비아의 리본형 헤드폰이라는 평가가 나와서 일견 납득이 되면서도..ㅋㅋ
솔직히 ZMF는 어투어가 잘 나온 것이지 나머지는 그 정도까지 21C 명품은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RAAL 브랜드로 헤드폰 나온게 몇 개 안되는데 RAAL 1995는 왜 또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AMT도 그렇고 리본 드라이버도 그렇고 높은 산을 꼭 한겨울에 어려운 코스로 오르는 사람들 같아요. 그런 사람들의 도전도 꼭 필요하지만 저는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싶네요 ㅎㅎㅎ
ZMF는 어투어를 만나보길 기대했는데 못 만나서 아쉽습니다. 베리떼 밀폐도 기대했었는데 어딘가 이상한 오픈형이;;;
와.. 엄청 많이 들어보셨네요!
아주 그냥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청음하다 왔네요.ㅎㅎㅎ
와. 천사랑 결혼하신 분이 여기 계시네요....
메이저가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네요!
이런 글은 유저 리뷰에 두고 보고 싶네요! ㅎㅎ
정보가치는 없는 글이니 자게에 냅둬주세용ㅎㅎㅎ
역시 컴포저 DD 헤드폰 중 1황 인거 같습니다 ㅋㅋ
잘 보고 갑니당 ㅎㅎ
위에 것 중 갖고 있는게 HEDD1, 컴포저, 스텔스, 베리테 오픈 정도네요. 컴포저하고 스텔스는 트랜지언트와 명료함이 좋은 소리가 땡기고 착용감이 좋은 헤드폰을 듣고 싶을 때 꺼내는데 좋아하시는 취향이 이쪽이신 것 같네요. HEDD1은 제가 갖고 있는 폰 중 가장 무겁고 착용감이 나쁘지만 중고역의 특색있는 소리와 저역의 울림이 좋아서 가끔 꺼내 듣습니다. 베리테 오픈은 플랫패드에서 들어야 안개같은 중고역이 명료해져서 괜찮은데 장착된 패드가 안맞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좋은 헤드폰을 많이 갖고 계시네요. 부럽습니다!
이어컵을 엎어논 사진이라 잘 안 보이지만 이 패드는 플랫패드가 아니겠지요?
작년 연말에 하이델베르크 잠깐 들렀었는데 타아밍 아쉽네요 ㅠㅠ
우리집 폰에 우승 주셨네요 감사의
인사를!
정말 좋은 기회를 얻었네요.
뭐든 기록을 해두어야 합니다.
저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그냥 적어둡니다.
언젠가 내 기억력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고부터 그러한데, 아깝게도 기억이 좋을 때부터 그러는 것인데 하면서 후회한답니다. 언제 착한 부인하고 놀러오세요.
정말 이쁜 헤드폰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