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나이차를 극복한 헤드폰과 앰프의 조합
일전에 이베이 경매로부터 1982년에 출시된 스탁스의 빈티지 앰프인 'SRM-1 MK2 PRO' 모델을 입수하였습니다. 출시된 지 40여년이 넘은 이 골동품 앰프를 굳이 구해서 뭐하나라는 회의감도 들었지만 그 당시 스탁스 엔지니어의 철학과 기술이 담긴 이 역사적인 제품을 한 번쯤은 들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기에 구매를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 모델은 스탁스의 기념비적인 헤드폰인 'SR-람다 프로' 모델을 구동하기 위해 개발된 앰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SR- 람다는 벤츠에서 자동차 소음 측정 및 분석을 위한 용도로 의뢰하여 개발된 헤드폰이었는데, 초기에는 노말 바이어스인 230V로 구동되었습니다. 이후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의해 580V 구동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자, 'SR-람다 프로' 라는 580V 프로 바이어스용 모델이 개발되었고 동시에 이를 위해 개발된 앰프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SRM-1 MK2 PRO' 인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이라는 말이 있죠. 당시엔 기술집약적인 앰프로 출시되었겠지만 40여 년이나 흐른 지금도 통할까라는 의심은 당연히 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40여 년전에 출시된 음향기기는 그저 전축 같은 수준에 불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2021년에 출시된 동사의 헤드폰인 'SR-X9000' 과 매칭을 해보는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사실상 국내최초 시도라고나 할까요. 두 제품의 나이차이는 무려 40년 입니다. 본래 이 앰프를 구매한 목적은 X9000을 구동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구형 람다를 한 대 장만하여 그 당시 감성에 맞게 들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구의 조합 역시 매우 재미있는 실험이죠.
과연 어떤 소리를 들려줄 지 기대반/걱정반 심정으로 매칭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아래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시스템 구성
① DAC : JDS LABS ELEMENT III MK2 ESS CHIP(Line OUT)
② AMP : STAX SRM-1 MK2 PRO
2. 청음곡
① 가요 : 아일릿 'Magnetic', 비비 '밤양갱', 르세라핌 'EASY'
② OST : 늘 테스트용으로 사용하는 애니 OST 3곡, 그 시절 감성을 느낄 수 있는 1980년 대 애니 OST 5곡
(도라에몽 주제곡,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계십니까, 요술공주 밍키 주제곡, 오렌지 로드 삽입곡 등)
3. 음색 평가
① 전반적인 인상, 느낌
전축같은 이미지를 상상하며 걱정했지만 그것을 가볍게 무너뜨리는 확실한 특색과 맑은 음색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극저음~저음이 빠지고 중고역~고역이 강조되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본인처럼 HD800의 청명하고 맑은 음색을 선호하는 유저들에게는 최적의 매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X9000이 이전에 비해 좀 더 HD800스러운 성향으로 변했다고나 할까요? 제 귀에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인 음색으로 다가왔습니다.
② 극저역~저역 음색
이 대역의 성향은 다소 감소하기 때문에 베이스의 펀칭과 같은 요소는 많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잔향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대신에 상당히 빠른 반응속도의 저음 특색을 보여줍니다. 펀 사운드 성향의 저음이 아닌 분석적인 저음이라고 불 수 있겠죠. 이는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만, 사실 귀를 누르는 저음을 선호하지 않는 본인에게는 단점으로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③ 중역~중고역 음색
중역대는 특별히 강조되기 보다는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되는 느낌입니다만, 중고역 음색은 아주 약간 강조되는 성향입니다.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소리가 조금 가볍게 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 대역은 보컬과 공간감과 연관이 높은 대역인데요,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컬은 여전히 HD800보다 선명하고 공간감 역시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형성됩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④ 고역~초고역 음색
치찰음 대역의 부스팅인지는 몰라도 'ㅅ' 발음의 치찰음이 조금 더 강조되는 느낌입니다. 이는 단점으로 작용하긴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별가루 흩날리는 듯한 매력적인 고역대가 이를 커버해 줍니다. 앞서 ②~③의 특색과 조화되어 도리어 이전보다 더욱 스탁스 특유의 별가루 흩날리는 음색이 강화되었다고나 할까요. 1982년의 스탁스 음향 엔지니어는 분명 별가루 성애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4. 총평
40년의 나이차이 극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물론, 요즘 출시되는 4~500만원 대의 하이엔드급 앰프에서는 더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1982년식 감성의 앰프는 분명 제게도 감동을 안겨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왜 수 많은 해외 유저들이 그 시절 스탁스 앰프의 성향을 그리워하는지, 요즘 나오는 앰프에서도 그런 감성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입니다.
흔히 이 앰프에 대해 해외에서는 'NON-COLORED, CLEAR, SILENT' 라고 표현합니다. 본인 역시 비슷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앰프 자체가 너무 낡아 언제 고장날지 모르고(자칫하면 앰프는 물론 헤드폰도 동시에 비명횡사할 가능성도...), 헤드폰 단자를 끼우는 구멍이 너무 뻑뻑하여 탈착 시 흠집이 날 가능성이 높아 X9000을 활용하여 매우 자주 듣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스탁스의 고전 헤드폰인 '람다 프로 클래식' 이 소포로 도착하게 되는데요, 추후에는 이 헤드폰도 매칭하여 들어보고 리뷰를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13
댓글 쓰기시대를 초월한 만남이군요. 스탁스가 과거에 추구하던 소리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네요. 잘봤습니다.
지금에야 클리어 하고 측장치 좋은 앰프들이 많아졌지만 무려 40년전에 그런 정교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스탁스는 시대를 크게 앞서가던 브랜드 였군요!
.
괜히 명가가 되는게 아닌거 같습니다.
그래도 스탁스는 장인정신을 고집하기 때문에 늘 높은수준의 제품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열정이 느껴지는 후기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런 시도는 다른곳에서는 불가능할 정도인데(아예 폼펙터 자체가 변해서..) 음향쪽에서는 자주 일어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