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620s 후기입니다
(이 후기는 전지적 뉴비 시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수요일 깊은 밤, 영상을 보다 갑자기 삘받아 룰루랄라 시킨 620s입니다.
택배 송장이 올라왔다가 사라진 걸 봐서, 저는 다음주에 오는 줄 알았는데 금요일 아침에 잘 도착하더군요. 배송 굉장히 빨랐습니다.
이제 주말동안 이거 즐길 일만 남았다며 들뜬 마음으로 택배상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하나의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현재, 집에 가위며 커터칼이 없습니다.
굳이 사용할 일이 없기도 하고, 가위는 있었는데 사무실로 가져가고 난 후 굳이 구비해놓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약 세 가지였죠.
1. 손으로 뜯는다.
2. 편의점으로 달려가 하나 사온다.
3. 뜯지 않는다.
3은 말도 안되고, 1은 마음에 들지 않고 2는 너무 귀찮았죠.
그때, 퍼뜩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더군요.
옛날에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인 모노가타리 시리즈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이 장면입니다. 여동생이 머리카락을 열쇠로 서걱 잘라버린 것이었죠.
저는 단 한번도 열쇠가 쇠붙이며, 날카롭다는 인식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도요.
다만 제 주머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열쇠가 짤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위에 박스 사진입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잘 잘렸습니다. 단면은 조금 울퉁불퉁 하지만요. 생활스킬 하나 더 배워갑니다.
역시 애니메이션은 인생의 교과서입니다.
난생 처음 구매해본 젠하이저 신품 상자를 보니, 다시한번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안전 포장은 물론 만족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깔삼하군요.
손에 쥐어보니 생각보다 컴팩트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패드 부분도 생각보다 땅땅하고, 사이즈도 막 크지는 않군요. 무게도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머리에 써 보니, 일단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내부 공간이 굉장히 넓다는 것입니다.
저는 약간 귀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이걸 쪽박귀라고 하던가요?)
다른 헤드폰들은 약간이라도 닿는 느낌이 있는데, HD620s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네요. 엄청 넓습니다.
장력도 약간 있는 편입니다. HD600만큼 쌔진 않습니다.
다만 밀폐형이라 그런지 이압도 약간 느껴집니다. 강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차음성이 꽤나 훌륭합니다. 밀폐형을 사용해야하는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굉장히 큰 메리트입니다.
그런 느낌으로 간단히 둘러보고 난 후, 룰루랄라 청음을 시작했습니다.
청음소스는 V50s입니다. 꽤나 애용하는 기기입니다.
전체적으로 첫 인상은 타겟 사운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굇수분이 간단리뷰 남겨주신 것 같이, 젠하이저 시그니처 사운드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특유의 찰랑거리는 느낌. 확실히 6시리즈 사운드라고 느껴졌습니다.
다음은 감명받은 곡들입니다.
1. 理想的パラドクスとは (이상적 패러독스란)
최근 걸밴크 즐겨보다가 듣게 된 곡입니다.
초반 인트로에서 이 헤드폰의 특징적인 면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같이 치고 들어오는 각종 악기 소리들이, 서로 뭉게지지 않고 적확한 소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일단 오, 하면서 듣고 있는데, 6초쯤부터 시작되는 베이스와 일렉, 드럼의 합주가 정말 환성적입니다.
명확히 들리는 베이스 라인과 탁탁 튀는 드럼, 그리고 그 위에 싸인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일렉의 소리가..... 와... 진짜 좋습니다.
그 후에 이어지는 보컬 파트에서도 다시한번 감명받았습니다.
보컬이 타 악기들과 깔끔하게 잘 분리되어 들렸고, 아주 매끄럽습니다. 다만 젠하이저 사운드라 살짝 날 선 느낌은 있습니다.
저만치서 들리는 둥두둥두둥 둥 탁, 하는 킥드럼과 보컬의 거리감은, 아주 광활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공간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2. Hello World
평소에도 즐겨 듣는 LiSA 곡 중 하나입니다.
이 곡, HD620s로 굉장히 특출나게 들립니다.
한가지 밝히자면, 저는 보컬을 좋아합니다.
이 헤드폰이 보컬폰이라고 단정지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보컬이 매우 매력적인 폰임에는 확실합니다.
코러스 도입부가 미쳤습니다.
잔잔하게 진행되던 앞 부분과는 달리, 코러스엔 갑자기 대량의 사운드가 출몰하는데요, 여기서 620s가 표현해내는 보컬의 진미를 느낍니다.
타 악기들과의 뛰어난 분리감으로 인해 보컬이 굉장히 잘 들립니다. 그리고 그 보컬이 LiSA입니다???
미쳤다는 결론밖에 안 나오네요.
3. 私は雨 (나는 비)
이나바 쿠모리는 좋아하는 P 중 한 명입니다.
여리여리한 보컬 뒤에 상당한 믹싱 실력을 자랑하는 분이죠.
마침 오늘 비도 오고 그래서 틀어봤는데, 이전에 다른 기기들로 들을 땐 느낄 수 없던 특징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독 이 곡이 심벌의 서스테인을 느끼기 쉽더군요. 막 시끄럽지 않은 곡이라 그런 걸까요. 쭈욱 이어지다 사라지는 울림을 즐기기에 좋았습니다.
간단히 총평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좋은 점:
편한 착용감
좋은 차음성
매력적인 보컬 표현
뛰어난 분리도
타겟 + 젠하이저 사운드
아쉬운 점:
약간의 이압
조금 아쉬운 빌드퀄리티
흠집에 취약할 것으로 보임
젠하이저 사운드
다른 굇수분들과는 다르게, 저는 아직 견문이 부족한지라 전문적인 감상은 불가능한데요, 그럼에도 일기삼아 한번 끄적여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사고 나서 생각해보니, 원래는 이 돈으로 WH-1000xm6를 살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딱히 후회심이 들지도 않는게, 오늘도 유선타락했구나아... 하는 생각입니다ㅋㅋ
댓글 23
댓글 쓰기이제 dac 업글 차례입니다ㅋㅋ
620s 한번쯤은 직접 들어는 봐야 겠네요.
좋은 유선 타락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쏘핫님 도 숙지니님 재벌님 따라 후후
열쇠는 여성들이 호신용으로 쓰는 물건이기도 하죠.
외국에서는 열쇠로 문을 열 때가 취약한 시점이라,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우고 괴한을 확 그어... (끝)
후기 잘 봤습니다! 본의 아니게 고오급 뚜따(?) 스킬을 알게 되었네요 ㅋㅋㅋ 620s가 밀폐형으로 나온 만큼 저음과 보컬에 특장점을 가지지는 않을까 싶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