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커트러리

무더운 날씨에 콘크리트아이가 자라는걸 보면서 슬슬 대량쇼핑발생 이벤트가 예감되어 펜던트 등부터 디너웨어, 커트러리에 이르기까지 쇼핑 리스트를 뽑아보니 특정 몇가지 브랜드에 꽤나 치중됐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그러고보니 이헤폰도 정리하고 남긴 건 전부 한가지 브랜드였고, 옷은 말할것도 없고 원두 구입처조차 한번 정착하고 나면 앵간해선 바꾸지 않습니다. 저 같은 '브랜드 충성도 높은 소비자'라는 부류는 그럴듯한 철학이 있고, 이를 증명하는 비상업적인 실험이 있으며, 품질 유지가 안되면 과감하게 모델라인을 폐기하는 장인스런 연출?과 클래식이 되기 위한 체계적 카테고리만 있다면 나이에 관계 없이 달려들어 컬렉션을 완성하기위해 발품을 팔죠.

예전엔 안 이랬는데 말이죠. 그런걸 컬렉터라고 여기지도 않았고 당연히 4인 테이블 의자가 전부 다르고 식기는 재질부터 제각각이며 뭐가됐든 세트화를 죄악시하고 넘버링를 혐오하며 카오스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밸런스를 중시하던 어느 시절엔 말이죠.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왠지 이게 다 학창시절에 술담배 맛을 들이며 감각 아래에 학습중독되고 구획된 브랜드믿음 때문이려니 싶다가도 본래 인간은 여유가 생기면 그릇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이상의 것을 소유하고싶어하는데 '컬렉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브랜드의 달콤한 집합이 우리 욕망의 객체를 확대- 흐리게- 둔하게 만들어 소비를 부추기는 상식상술에 비춰보더라도 일단 세트가 완성되어 눈 앞에 나열되는 순간 테트리스 네 줄 막대가 한구석에 내리꼿히는 듯한 그 쾌감과, 컬렉션의 완성을 알리는 팡파레와 함께 소중하던 각각의 소품들에 대한 관심도 세트화 되어 즉사_하는 기묘한 허무에 대한 경험들은 단지 흐릿해진 욕망의 경계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만듭니다.

걍 나이 쳐먹고 배가 부른건지 혹은 좀더 세심한(?)쇼핑을 못하고 컬렉션이라는 양식미로 후려치고는 제사 음식을 배달시키고 새집을 공양 못 한 불효자의 마음으로 틱틱 하소연을 하는건지 몰라도 예전에 비해 뭔가 "대충대충" 이런 마음이 되버린 건 숨길 수가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