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여름을 나기위한 나폴리탄 괴담 몇가지
지난번에 음갤에 올렸던 "당신만이, 행복하기를" 듣고서 나폴리탄/규칙서 괴담 생각나서 읽다가 몇개 재밌는거 가져와봤습니다
문제될시 삭제
나폴리탄
지금 당장 그 건물에서 나오시길 바랍니다
이 규칙서가 어떤 방식으로든 귀하에게 도달해서 당신이 지금 이것을 읽고 있다면, 귀하가 지금 식물인간 상태이거나 무의식 상태/가사상태에 30일 이상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신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가사상태에 빠진 귀하가 꾸고 있는 아주 기나긴 꿈 같은 것입니다. 귀하가 지금 느끼는 학교나 직장 생활, 교우관계나 연인관계 등이 아무리 현실 같고 아무리 진짜 같더라도, 진짜 현실의 귀하의 몸은 현재 가사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귀하의 가족분들의 동의를 얻어, 부작용이나 사태의 악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후 이 규칙서를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이 규칙서는 귀하가 식물인간 상태/가사상태에서 회복해 의식을 현실로 돌려놓는 데 도움이 될 지침입니다. 실제로 식물인간들이 기적적으로 깨어나거나 회복한 예가 세계 방방곡곡에서 심심찮게 있으며, 이 규칙서는 생환한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니, 부디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현실에서의 귀하의 가족분들이 기나긴 병수발에 질려 당신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기 전에 서둘러서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곳과 현실의 시간은 다르게 흐릅니다. 사람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으나 이 규칙서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의 30분이 현실세계의 1년 정도입니다.
건물이라 함은 지붕이 있으며 사방이 밀폐/반밀폐되거나 지면에서 일정 높이 이상 떨어진 장소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차량(승용차, 버스, 기차, 지하철)등도 포함하며, 텐트, 건물의 옥상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 항목의 실행은 다른 모든 항목의 실행보다 우선됩니다.
건물에서 300초 내에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 중 무사히 귀환한 예는 없습니다. 도저히 300초 내에 나올 수 없을만큼 높은 건물에 있는 경우 차라리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서 나오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그 편이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규칙서를 읽으실 때 이미 건물/차량 외 야외에 계셨다면, 죄송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규칙서의 배달은 반드시 올바르게 되는 것만은 아니거든요.
2. 건물에서 나오셨으면 3번 항목에서 말한 건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다른 건물(차량 포함)로는 들어가셔서는 안됩니다.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에 갇힐 뿐이며, 거기에서 나오는 방법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300초 내에 확실하게 야외로 나오시는 걸 성공하셨다면 하늘을 바라보세요.
시간대가 밤이라고 하더라도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졌을 것입니다. 시간대가 낮인 경우, 여전히 밝지만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태양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는 귀하의 각성을 눈치채었으므로, 이제부터 귀하를 돌려보내려 하지 않을 겁니다.
3. 이제부터 다음의 조건에 부합하는 건물을 찾아가세요. 아파트이든 백화점이든 상가이든 학교이든 상관없습니다.
3ㅡ1 겉보기에 지상 5층 이상인 곳
3ㅡ2 살아있는 생물이 매매의 대상이 되는 곳(펫샵, 활어회집)이 아닐 것
3ㅡㄷ. 귀하가 무교인 경우에 한해, 종교 시설 (교회, 점집) 이 없을 것 (종교활동을 하는 경우라면 상관없습니다)
3ㅡ4 귀하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써진 글이 걸려 있는 곳 (귀하가 읽지 못하는 언어, 예컨대 한자로 씌여진 학교 현판이나 프랑스어로 쓰여진 옷가게 간판 등이 걸려 있는 건물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3ㅡ5 귀하가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은 곳
3ㅡ6 귀하가 아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곳
4. 최대한 신속하게 그 건물을 찾되, 이 건물을 찾는 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마세요. 누군가가 당신에게 말을 걸거나, 시비를 틀거나, 전화를 걸겠지만 모두 무시하십시오. 문자 메시지로 하는 필담이나, 인터넷상에서 리플을 다는 행위 역시 모두 금지입니다.
혹시 소지품 속에 작은 칼날이나 귀금속 (목걸이나 반지 등)이 있다면 건물을 찾을 동안 입에 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5. 건물을 찾으셨다면 입구로 진입을 시도하십시오.
이 때 반드시 왼쪽 신발과 오른쪽 신발을 바꾸어 신은 후 진입하셔야 합니다. 자기 신발인 경우가 성공률이 높지만, 신발이 없는 상태라면 의류수거함을 뒤지거나, 지나가던 사람들의 신발이라도 훔치거나 뺏거나 돈을 주고 사셔서 (이 과정에서 4번 지침을 상기하십시오, 절대 그 사람과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신발을 조달한 후 신은 채 진입하셔야 합니다.
머리카락을 묶은 상태라면 머리카락도 반드시 풀어 주십시오.
6. 들어오신 건물이 3의 조건에 부합한다면 그 건물은 불이 켜진 상태에서 내부가 비워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됩니다. 계단을 찾으십시오.
1층이라고 써져 있는 현재 층수 알림문구를 확인한 후 계단을 오르시면 됩니다 (유럽권에서 태어나시거나 자라서 rdc나 0층이라는 표기가 익숙하시면 0층이라고 적혀있어도 무방합니다). 1층이라고 써있는 문구가 없거나 다른 층수가 써져있는 경우, 1분 이상 눈을 감고 기다리셔서 1층이라는 층수를 확인하신 후 진입하십시오.
층계에 진입하는 순간 주의하십시오. 계단의 단과 단 사이에서 5초 이상 발걸음을 멈추거나 주저앉는 순간, 혹은 신발이 벗겨지는 순간 계단은 무한히 늘어나 결코 윗층이나 아래층에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넘어지지 않게 침착하게 걸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넘어지거나 신발이 벗겨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빨리 걸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6ㅡ4 문이 파란색 외 다른 색상이거나, 문이 아예 보이지 않을 경우, 다음 층으로 올라가세요. 다시 1층이라고 써져 있을 겁니다. 위 상기한 6번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시면 이번에는 9층에서 파란색 문이 목격될 수 있습니다. 파란색 문이 나왔다면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9층에서도 파란색 문이 출현하지 않은 경우, 파란색 문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6번의 과정을 되풀이하시면 됩니다.
6ㅡ5 9층 다음으로 파란색 문이 목격되는 층수는 25층, 그 다음으로 목격된 층수는 81층, 그 다음으로 목격된 층수는 216층, 그 다음으로 목격된 층은 519층, 그 다음으로 목격된 층수는 1600층을 넘습니다. 그 이상의 층수에서 귀환한 사람의 예시는 아직 보고된 바 없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층계를 오르시되, 여기에서의 30분은 현실에서의 1년임을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가족이 여러분을 부양할 수 있는 금전적 자원과 시간과 애정의 한계를 잘 따지시고, 한도를 넘어버렸다고 생각되실 때면 신발을 똑바로 신고 마저 계단을 올라 주세요.
파란색 문이 있긴 했는데
이운일 (38, 고등 수학 강사) 의 경우
그는 밤 10시 반에 퇴근하며 버스에서 갤질을 하다가 "당장 이 건물에서 나가십시오"라는 글을 읽었다.
오, 잘썼네. 개추. 누르고 뒤로가기.
그에게 행운이 따랐다면, 바로 다음 역이 그가 내리는 역이었다는 것이었다. 300초 내에 버스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기에, 밖은 환하게 물들었다. 젠장, 만약 낚시인 줄 알았다면 정말 큰일날 뻔 했네...그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행운은 딱 여기까지였다.
그는 지금 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기 떄문이다.
3층에서도 문이 없었고, 9층에서도 문이 없었다. 슬슬 규칙서의 진위를 의심할 떄쯤, 25층까지 올라온 그의 눈 앞에 드디어 문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 문은, 하늘색도 청록색도 남색도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의 아내가 본다면 0,0,255의 완벽한 RGB값을 자랑하는 기깔나는 파란색, 파란색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가로로 프린트되어, 큼지막하게, <<출입금지>>라고 씌여진 a4용지가 문에 떡하니 붙어있었기 떄문이다. 까만 폰트, 그의 아내가 보았다면 고딕체라고 사족을 달았을 문이다.
출입금지라, 씨발...출입금지.... 그는 담배를 한 대 빼물고 싶은 충동을 애써 자제했다. 규칙서엔 흡연금지라는 조항은 없었긴 하지만. 아무튼간에. 출입금지라고? 들어오지 말란 소리 아닌가. 그런데 이거 놓치면 다음 문은 81층, 혹은 216층에서나 나온다. 참고로 롯데월드 빌딩이 123층인가 그렇다. 그리고 216층에서도 문이 다시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게 올바른 문인가? 규칙서에 따르면 파란색 문은 열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문은 분명히 <출입금지>라고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누가 붙여놓은 거지? 선의를 가진 이가 붙여놓았나? 아니면 악의적으로 여기서 나가지 말라고 붙여놓았나? 아니, 애시당초 <누가>를 논하는 데 의미라도 있나? 규칙서를 다시 읽어보면 올바르게 건물을 선택했다면 건물은 "내부가 비워져" 있어야 한다. 즉,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건물이 올바르게 선택되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1층 떡볶이가게부터 6층 서예학원까지 읽지 못하는 글자는 없었단 말이다. 심지어 병원이나 약국은 "카톨릭의대" 부속일까봐 일찌감치 걸렀다. 내부가 비워져 있다면 여긴 지금 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런즉슨 저 문에 장난을 친 사람...이든 사람이 아닌 무언가든 존재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누가 장난을 치진 않고, 원래부터 출입금지라고 되어 있었단 뜻... 아무도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신뢰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지만 이런 사유에 의미가 있나?
애시당초 6층밖에 없던 건물이 무한히 층수가 지속되는 이 시점에서 이런 사유가 의미라도 있냐는 말이다.
지금 나와 이 세계는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다고 봐야 옳지 않을까? 그러하다면 이런 사유도 이 세계가 나에게 거는 심리전이라고 해석해야 옳지 않을까?
애시당초 <출입금지>는 한국어로 써 있지 않은가? 만약 한국어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다른 언어, 예컨대 아랍어나 스페인어 등으로 써졌다면?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규칙서에선 "간판에 해독하지 못하는 언어가 있으면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적어놓은 게 아닌가? 이 건물의 내부는 외부의 표지를 흡수하고 해석하여 표지를 제시하는데, 그 표지를 내가 해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해석하지 못하는 언어를 피하라고 적어놨고...그럼 해석할 필요가 있는 건 다시 말하자면 읽을 가치가 있다는 거 아닌가? 읽을 가치가 있다는 건 다시 말해 따를 가치가 있다는 거 아닌가?
아니, 이런 사유도 의미 없다. 아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피하라"는 의미에서 저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무교인 사람은 종교시설을 거르라고 적혀 있는데 무교에게 종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 거르라고 한 거 아닌가? 잠깐. 씨 그렇다면 살아있는 생물이 매매의 대상이 되는 건 또 왜 거르라는 거야?
애시당초 규칙서에서 논리를 찾는 게 잘못된 게 아닐까?
그저 이 "출입금지" 문패는 여기에서의 30분이 현실의 1년이라는 걸 악용한 악의의 산물이 아닐까? 그저 나를 지체시키려는.
벌써 이 문패 앞에서 5분은 고민한 것 같다. 현실 시간의 2개월이다. 그게 지금 날아간 것이다. 마치 한순간의 연기처럼.
이걸 열어, 말아?
규칙서와 현장이 충돌할 떄, 어디를 믿어야 하는가? 그는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 살짝 돌려보기도 했다. 그 문은 저항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그 문을 열진 않았다. 아직 25층이어서 다리에 여유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혹은, 조기축구회 회장이라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는 파란 문을 뒤로 하고 다음 계단을 올랐다. 다리는 아직 버틸 수 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생각되실 떄면 신발을 똑바로 신고 마저 계단을 올라주세요."
아무것도 없던 216층을 지나 다시 1층으로 진입했을 떄 그는 규칙서의 이 문장을 되뇌었다.
그는 후회했다. 아까 그 파란 문으로 들어갈걸. 출입금지 문패 따위엔 신경쓰지 말걸.
다음 문이 나오는 층은 519층이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벽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 규칙서는 아무것도 포기하라고 하질 않았다. 희망만 있다면 영원히 이 층계를 오르고 또 오를 수 있다.
다만, 이론적으로 무한한 재시작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정신과 육체에는 한계가 있다.
신발을 똑바로 신고 마저 계단을 올라주세요.
신발을 똑바로 신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519층에서 그는 드디어 문을 만났다.
그건 파란 문이 아니었다.
동시에 파란 문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네온빛이 도는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철문이었다. 어떻게 봐도 파란색과는 거리가 먼 문이었다.
하지만 거기엔,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파란색 문> 이라고 써진.
씨발,
무슨 "영희의 방"이라고 써져 있듯, "파란색 문"이라고 문패가 붙어 있던 것이다.
그는 대학교 시절 교양철학 시간에 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떠올렸다. 파이프 하나를 그려놓고, Ce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어놓은 그 유명한 그림.
그래서 씨발, "파란색 문"은 파란색 문인가?
그는 다시 규칙서를 보았다.
"파란색 문이 보일 것입니다. 그 문을 여시면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습니다." "문이 파란색 외 다른 색상이거나 (....) 여시면 안 됩니다."
만약 자기 앞의 이 문에 "파란 문"("파란색 문"이 아니라)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그는 주저없이 다음 층으로 갔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규칙서에 <<"파란색 문"이 보일 것입니다>>라고 파란색 문 앞뒤로 따옴표 처리를 해서 적혀 있었다면 그는 주저없이 문을 열었을 것이다.
걸리는 것은 "문이 파란색 외 다른 색상이거나" 이 부분. 정확히 말하자면 내 눈 앞의 이 문은 "파란색 문"이긴 해도 "파란색 외 다른 색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미 "파란색 문"이 보인 시점에서 6-4의 조건 따위 중요하지 않은 거 아닌가? "파란색 문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해야 하는 게 요점이라면, 파란색 문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닌가?
다리가 너무 아팠다.
어쩌면 여기가 3층, 9층, 25층, 81층이었다면 그는 이 문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지금 상황은 좆된 상황이다. 이게 잘못된 문이라면 문 열면 좆되는 건 알겠는데, 이미 충분히 좆됐다. 여기는 이미 519층이다. 문 뒤에서 뭐가 튀어나온다면 바로 재빠르게 닫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안전하지 않을까.
문은 건물 전체에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내며 의외로 쉽게 열렸지만, 그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문 뒤엔, 건물의 시멘트 벽과 똑같은 색의 시멘트 벽이 있을 뿐이었다. 아무 공간과도 이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참으로 김빠지는 일이다. 그는 문 뒤의 시멘트 벽을 만져보고, 툭툭 쳐보기까지 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파란 문"이라고 적은 누군가의 의도가 나에게 시간낭비를 시키는게 목적이었다면, 이루어졌다.
그는 문을 도로 닫았다. 그 문은 커다란 끼이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리고 그는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을 뗐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이건 환청이 아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계단을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었으나, 규칙서의 "계단의 단과 단 사이에서 5초 이상 머물 경우 계단은 무한히 늘어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생각나 발을 다시 옮겼다. 다행히도 5초 넘게 지나지 않았는지 무사히 다음 층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윗윗윗층? 윗윗층? 아직 멀게 들리긴 한데, 건물의 특성상 소리가 반사되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가 지금 위층으로부터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명백한 인기척과 함께,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 발걸음 소리가 이를 반증한다.
저것이 나를 찾고 있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다.
저거랑 맞닥뜨리면 좆될것같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다.
이대로 계단을 오르면 저거랑 마주친다.
심지어, 저 구두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그러면 저거를 피해 뒤로 가야 하나?
뒤로 간다면.... 다시 말해 계단을 내려간다면 어떻게 되나?
규칙서에 내려가도 된다는 소리가 있었나?
그런데 여기는 1층인데, 내려가면 어떻게 되는거지? 도로 216층이 나오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신발을 "똑바로 신고" 계단을 끝까지 올라갈까?
하지만 신발을 똑바로 신고 계단을 올라가다가 저거랑 만난다면?
그리고 신발을 똑바로 신고 계단을 내려간다면 어떻게 되지? 그건 안 나와있나?
차라리 여기에서 주저앉아, 계단을 무한으로 만들까? 그럼 저거에는 잡히지 않을텐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원히 여기에 갇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무한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저건 왠지 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무한한 계단에 갇히는 게 정말 나은 선택지인가? 굶어죽는거? 굶어죽을 수는 있고? 애시당초 여기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지? "부작용이나 사태의 악화가 있을 것"을 감수하고 규칙서를 나에게 보냈다고 했는데, 그 부작용이나 사태의 악화가 이런 걸 포함하는 건가?
발걸음 소리가 바로 위층에서 들린다.
인간성 필터
Acta est fabula, plaudite!
과학의 종말
"삼체라는 소설 읽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연구원A는 원래도 SF소설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SF에 흥미를 느껴 물리학자가 되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다만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히 연구원A와 같지 않았다.
"그게 뭔가?"
"중국의 유명한 SF소설입니다. SF불모지인 중국에 SF붐을 가져왔을 정도로 대단한 소설이지요."
연구원A는 자신이 이 소설을 소개하게 되어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높으신 분들은 연구원A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럼 설명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대부분 물리학에 능통하시지만, 이 자리에는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니 삼체 문제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프로젝트로부터 사영 된 화면이 나타났다. 두 개의 공이 서로 회전하는 그림.
"이체 운동은 중력이 작용하는 두 물체의 운동을 말합니다. 이 이체 운동은 과학적으로 운동 계산이 매우 쉬워 해가 전부 구해져 있습니다. 문제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지요."
연구원A가 버튼을 누르자 그 다음에는 세 개의 구체가 나타났다.
"삼체 운동은 이제부터는 문제라고 불립니다. 애초에 삼체 문제의 일반 해를 구할 수 없음이 증명 되어 있지요.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체의 특수 해, 부분 해를 찾는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수소 원자 모형 외의 원자 모형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이 문제 때문입니다. 헬륨부터 삼체 운동이 되는데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전자 운동을 계산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연구원A는 청중들의 반응을 잠깐 살폈다.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어려운 얘기지요? 그럼 이번엔 다른 분들을 위해 좀 더 쉬운 얘기로 좀 넘어가겠습니다."
삑.
"환경 문제. 이건 안 들어보신 분들이 없겠지요."
사람 좋게 웃는 연구원A와 달리 다들 눈쌀을 찌푸렸다.
"지금 장난치나?"
결국 맨 앞에 있던 사내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다들 바쁜 사람 모아 놓고 뭐 스무 고개라도 하자는 건가? 지금 환경 문제로 모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보이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에 물에 잠기는 도시가 한둘인 거 같아?"
연구원A는 잠깐 웃는 표정을 유지한 채로 청중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고 일어나서도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부 필요한 질문입니다. 그 사이에 잠깐 농담으로 환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망해가는 세상에 조금 불편한 농담이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래도 괴짜의 부족한 유머래도 조금만 참고 들어주시겠습니까? 금방 끝내겠습니다."
"그래, 진정하게나. 역사상 전례 없는 천재라고 하니 다 이유가 있겠지."
"감사합니다."
여전히 탐탁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다만, 그게 전부였다.
저 앞에 서 있는 사내가 세상이 망해가는 중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유명했지요. 환경 변화는 지구가 3도 이상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그 뒤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그 뒤로는 무슨 짓을 해도 올라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러고 있지요."
PPT화면에 나타난 것은 기후 변화에 대한 통계 자료였다. 최근에 갑자기 올라간 온도는 이미 5도가 넘어간 상태. 즉,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져 있다는 얘기였다.
"아예 사람들이 손을 놓고 있진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고온 초전도체, 부분적 핵융합 기술, 직접적 탄소 재포집 기술 등 수 많은 기술이 만들어졌지요."
고온 초전도체 기술은 연구원A의 성과였다. 상온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실용 가능성이 보이는 수준의 고온까지 높이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통해 핵융합 기술이 부분적으로 실용 가능 하게 되었다. 만약 더욱 개발에 매진했다면 핵융합 발전이 부분적이라 부를 필요도 없어질 거라고, 그렇게 되면 5차 혁명이라 부를 세상의 변화가 올 거라는 등의 얘기가 많이 들려왔다.
삑, 다음 화면. 이번에 화면에 나타난 것은 4개의 기술들이었다.
"1차 산업 혁명은 기계의 등장이었습니다. 기술은 높은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2차 산업 혁명은 전기와 석유의 등장이었지요. 역시 돈 때문입니다. 3차 산업 혁명은 정보 통신 기술입니다. 세상은 좁아졌고 또 무척이나 빨라졌습니다. 기술 가속은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컴퓨터로 자동화 하던 것들이 이젠 아예 컴퓨터 혼자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혁명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지수 수준으로 발전하는 기술은 언젠간 인류를 신이 되도록 할 것 같았습니다."
삑. 그 다음 넘어간 화면은 지수 함수와 수정된 지수 함수였다. 수정된 지수 함수는 일반적인 지수 함수와 달리, 어느 한 점근선을 향해 나아가다 서서히 증가량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뭐든지 이겨낼 것 같았습니다. 기후 변화 마저도요. 다만, 그 어떤 기술도 이미 변한 기후를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거기까지 가니 의문이 들었죠. 과연 핵융합이 개발되었다고 한들 기후를 되돌릴 수 있을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핵융합 기술만으로는 뭐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단 말입니다. 좀 더 근본적인 요령이 필요했습니다. 강력으로 결합된 비행선을 만들 수 있고 관성의 방향을 직각으로 꺾고도 에너지 손실이 없도록 하는 그런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연구원A의 말은 이젠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력으로 결합된 비행선이라니. 애초에 그런 게 존재한다면 블랙홀에 준하는 밀도를 갖게 될 것이다. 연구하는 것자체가 공상 과학의 수준에 불과한 그런 것들.
"예, 과학에 조예가 깊으신 여러분이시니 제가 말씀 드린 게 얼마나 허망한 얘긴지 이해하실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게 가능한지 연구를 해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5차 혁명으로 도약할 수 있는가. 이걸 이해해야만 했죠. "
"그래서 핵융합 접고 몇 년 간 입자 가속기와 싸워가며 했다는 연구가 그건가?"
"그렇습니다. 상상력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겁니다. 한 때 말하는 기계를 상상한 인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냈고, 먼 곳에서 닿고자 하던 인류는 전화기와 인터넷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항상 성공해온 것은 아닙니다. 불가능에 도달한 적도 많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 빛의 속도 이상 도달할 수 없는 한계, 시간 여행의 불가능성. 되돌릴 수 없는 엔트로피. 그리고 계산할 수 없는 삼체 문제."
"세상에. 자네 미쳤군."
"아니요, 미치지 않았습니다. 더 얘기하겠습니다."
삑, 연구원A는 더는 청중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표정을 굳히며 진행했다. PPT 화면이 한 번 더 넘어갔다.
"우리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불가능성을 마주하게 될까요? 우리는 알아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왜 인류는 아직까지 인간 외의 지성체를 찾지 못했냐는 겁니다."
침묵. 어느 순간 청중들은 연구원A의 눈빛에 압도되어 있었다. 아니, 연구원A가 보이는 기괴한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저걸 결의라고 해야 할까.
"거대 필터 이론에 대해 들어보셨을까요. 이것도 뭐 공상 과학 같은 겁니다. 왜 인류는 아직까지도 생명체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냐는 겁니다. 아무리 우주가 넓다 한들 관측 가능한 우주를 샅샅이 살펴도 저희밖에 없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화면이 넘어가고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 그림에 빨간색 X표가 쳐져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 내에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역시 연구원A가 증명해낸 사실이다.
"그래서 한 번 고민해본 겁니다. 왜,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는가. 이 '거대 필터'는 하나의 장벽입니다. 인류로 따지면 기후 변화 같은 것이죠.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깔끔하게. 언젠가 대부분의 생물체들이 필터에 걸러져 멸망 하고야 만다는 겁니다. 어쩌면 그 필터는 지구와 같은 환경일 조건일 수 있고, 지성을 갖추는 것이 조건일 수 있겠죠. 필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했지요."
삑, 갑자기 화면이 어둡게 변한다.
"다만 저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아니, 화면은 어둡게 변하지 않았다. PPT에 나타난 화면은 우주였다. 검고 별도 그리 많지 않은 우주. 화면은 넘어가지 않았다. 방안은 무척 어두워 연구원A의 얼굴 표정 하나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소설 삼체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삼체 초반부에는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입자 가속기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데이터들이 어떻게 변인을 주어도 무작위 값만이 나옵니다. 연구가 무의미해지는 것이죠. 삼체에서는 사실, 아 혹시 읽으실 분이 계신다면 귀를 잠깐 막아주십시오. 큰 스포일러니까요. 예, 귀를 다 막으신 거 같으니 말씀 드리면 무려 외계인의 소행이었습니다. 신이 아니라 외계인이 주사위 놀이를 했다는 거죠."
"이봐.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말 끊지 마십쇼."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거야. 우리가 도대체 왜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지 설명이나 해보게."
"싫다면 나가셔도 좋습니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한 것일까? 천재만이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인가? 결국 누구도 연구원A를 설득치 못하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져 나간다.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핵융합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초전도체 부분이 아닙니다. 초전도체가 적정 온도까지 발전시키고 나면 핵융합을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랜덤성이었습니다. 얼마나 섬세하게 데이터를 설정하더라도 실패 여부가 완전한 무작위성으로 인해 결정 되는 겁니다. 거기서 저는 궁금했던 겁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변인이 있나? 온도, 압력, 밀도, 화학 반응, 심지어는 시간, 차원, 그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원리.' 장담컨데 저는 모든 변인을 다 넣어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결론 지었습니다. 우리는 벽에 도달 했다는 걸요."
"벽이라면 어떤?"
"불확정성의 원리는 신이 정해 놓은 법칙입니다. 아니, 그 뒤에 무언가 있을 수 있겠죠. 신만이 아는 완벽한 입자의 규칙, 움직임. 다만 저는 증명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 뒤에 있는 신만이 아는 법칙은 인류가 어떤 짓을 해도 알 수 없다는 걸요. 신이 정해 놓은 겁니다. 이 이상 너희는 이해할 수 없다. 더는 도달할 수 없다. 너희들의 상상은 그저 공상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은 이제 호기심 따위 가질 수 없다."
"...그러니까."
"예. 5차 산업혁명은 없습니다. 수학적으로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타키온의 존재가 부정 되어 시간 역행이 불가능하듯, 빛의 속도를 넘는 물질이 존재할 수 없듯, 우리는 핵융합을 포함한 모든 기술적 발전이 점근하게 되어있습니다. 인류의 기술적 발전은 지수 함수 그래프가 아닙니다. 오히려 로그 함수, 아니면 분수 함수에 가깝겠습니다. 아주 조금만 넘으면 될 거 같은 그 벽을, 우리는 영원히 넘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말은 자네가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고 애기 하는 건가?"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원A는 씨익 웃었다.
"저는 모든 걸 이해한 겁니다. 멸망하지 않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거대 필터에 도달하기 전 빅 브라더를 만들어 강력하게 통제하는 겁니다.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인류가 서로 멀었던 그 때에 고정하여 정보를 통제했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굳이 로그 함수 스케일의 한 점에 있으면 될 것을 미끄럼틀 타듯 내려가기 시작해버린 겁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좀 얘기를 하게. 이렇게까지 얘기했다면 반전을 주려고 하는 거지 않나? 자네의 발표 방법은 익히 들어 알고 있어. 극적 효과를 주려 하는 거지 않나."
처음 핵융합 기술을 발표했을 때도 그랬다. 연구원A는 그런 폼 잡는 일을 좋아했던 것이다. 소설을 좋아하기에 그런 극적 효과도 좋아했다. 물론 그런 극적 효과는 연구비 지원을 타내는 일에 효과적이었다.
삑, 연구원A는 화면을 바꿨다. 화면에 나타난 글자를 본 사람들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척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반전은 없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결말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기후 변화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비단 기후변화일 뿐일까요. 우리가 살아 남았다고 한들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우주가 결국 차가워지듯 우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멸망 시켰을 겁니다. 인류는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을 거라고 했나요? 틀렸습니다. 인류는 언제나 틀렸죠. 답 같은 건 한 번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틀리고 수정하고 틀리고 수정했을 뿐. 다만 이번이 유일한 정답입니다."
연구원A는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과학의 종말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탕!
화면에 피가 튄다. 연구원A는 쓰러지고 튄 뇌수가 방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충격적인 광경 앞에서 청중들은 새하얀 화면에 나타난 글씨와 연구원A의 시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 Thank you for watching our science.
약 5분 뒤 연구원A와 함께 연구했던 모든 연구원들이 집단 자살했다는 소식이 문자를 통해 전해져 왔다.
청중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청중들 중 하나가 연구원A가 사용했던 권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신을 억제하십시오
당신은 야산에서 눈을 떴다. 당신에게는 피 묻은 칼 한 자루가 쥐어져 있고, 주변에 한 장의 종이가 보인다. 아무래도 조난당한 것 같다.
스무고개를 좋아하십니까?
달을 보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