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생각나는 헤드폰 하나

젠하이저 HD495 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10만원 초반대에 판매되던 젠하이저 엔트리급 오픈형이었지요.

사진으로 보기엔 제법 그럴듯하지만, 현물은 상당히 작고 가벼웠습니다.
두꺼운 플랫베드 폼을 얇은 메쉬 천으로 커버링한 이어패드로 인하여

매우 산뜻한 착용감과 함께 체급에 비해 넓직하고 양감 많은 저역이 매력이었죠.

단, 거기까지였습니다.

HD600/590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젠하이저의 개성을 즐기기엔 좋았으나,

성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드라이버 앞은 물론, 배플의 댐퍼 부분까지 두터운 플랫베드형 이어패드가

빈틈없이 완전히 가리는 구조입니다.

당연히 투명감과 해상력이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아쉬워서 이어패드를 벗겨내고 들으면 그 광활하던 저역은 온데간데 없고

협대역의 심심한 사운드가 나왔습니다.

HD414에 비해 저역을 한껏 부풀린 그 이상의 성능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6만원대이던 베이어 DT231이나 소니 MDR-CD580보다 좋지 않았고

같은 가격대이던 MDR-CD780과 비교하면 격차가 확 벌어졌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HD495는 일종의 급 나누기 셋팅의 희생자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드라이버 앞을 두터운 폼으로 가려버리면 성능이 많이 저하되죠.

그런데, 이어패드를 벗긴 채 들어보면 드라이버 성능도 좋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플랫배드 패드를 써서 저역이라도 부풀려 웅장함을 살린 것 같았습니다만,

차라리 500시리즈에서 하우징만 더 줄인 셋팅이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성능은 아쉬웠지만, 작고 가벼운 체급에 뜻밖의 저음이 나오는게 재밌었기에

지금은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좋은 소리라며 듣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나름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입니다.

작은 헤드폰임에도 대편성곡을 들을 때의 저역 스케일감만큼은 굉장했습니다.

지금 구할 수 있다면, 이어패드 수급이 관건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