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럿루비 1세대 사용기
이 사용기는 철저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쓰여 졌습니다.
2008년 출시되고 단종 된지도 한참 된 이 기기를 제가 정신 나간듯한 DDC 업글 까지 해가면서 계속 쓰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소위 PC-FI의 태동기에 하이파이 오디오 회사도 아닌 참신한 국내 중소기업에서 야심차게 출시한 이 기기를 편견의 눈으로 보시진 않으신지? 출시가격 20만원대의 비교적 저렴하고 그 깜찍한 크기 때문에, 또 현재 중고거래도 거의 없지만 1-2년전에 5만원대에 거래될 정도니 싸구려 구닥다리 이미지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5만엔에 발매되었던 기기입니다. 오디오에 깐깐한 일본 사람들 이라도 50만원의 가격표에 선 듯 납득하고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스타일오디오의 지금은 작고하신 김동호 사장님은 누구보다도 오디오 애호가에 애국자 셨던 것 같습니다. 국내에는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하셨으니까요. 그 정신을 이어받은 게 JAVS, 오딘스트 같은 국산 오디오 회사들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 기기 랑 엠스케일러를 매칭 했을때 그런 선입견이 작용 해서인지 영디비에 임펙트가 더더욱 컸던 걸로 생각됩니다. 저 인간이 돈을 아끼려고 저런 퇴물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 것 아닌가 싶으셨을 테죠.
저도 선입견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얼른 정리하고 다들 많이 구입하시는 젠탑 이라도 쌓아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기회가 되어 포터블 용으로는 가장 우수한 측정치를 자랑한다는 토핑 G5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엄청 기대하면서 제가 들었던 소리는? 깨끗하지만 캐럿루비에 비해 음악의 혼이 빠진 소리 였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리의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스튜디오의 음악 작업에 사용되는 기기들이 전부 토핑 같은 측정치를 자랑하는 기기는 아닐 꺼라고 봅니다. 그런 측정치가 토핑 보다는 낮은 스튜디오 장비들로 좋게 들리도록 작업한 음악을 토핑 같은 측정치 우월한 장비로 재생을 하니 음악성이 죽어버린다는 결과가 나타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튜디오 장비들도 점진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니 앞으로 생산되는 음원들은 점점 좋아지긴 하겠지만요.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아무튼 G5를 들이고 나서야 캐럿루비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캐럿루비의 내부를 보면 부품 하나 하나가 다 고급 오디오용 부품에 전원부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걸 영디비 회원님이 가르쳐 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비싼 부품을 잔뜩 집어 넣은 제품의 헤드폰 단에 왜 싸구려 OPA2134를 넣었느냐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캐럿루비의 출시 시점 당시에 헤드폰 앰프에서 제일 화두가 된 건 HD600을 제대로 울리느냐 마느냐로 쓸만한 앰프다 아니다를 판별했던 걸로 기억에 남아 있고 김동호 사장님이 캐럿루비를 튜닝할 때 HD600으로 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기에 저음부를 HD600에 맞게 강화시키는 튜닝과 젠하이저 베일을 걷어내기 위해 고음부에 튜닝이 가해졌다고 제 주관적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HD600에 맞춘 알맞은 OP앰프가 중저음 강화가 특기인 OPA2134였던 거지 제조단가를 낮추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는 거죠. 딱히 비교할 덱앰도 없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다가 그렇게나 측정치가 우수하고 착색이 없다는 G5를 들이고 나니 캐럿루비의 튜닝이 귀에 들어왔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 HD600 타겟의 튜닝은 NDH30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저음부는 살짝 강화되어 하만 타겟 정도로 과하지는 않지만 현장감 있는 저음 재생에 일조를 하고 있고 젠하이저 베일을 걷기 위한 고음부 튜닝은 영디비 측정 리뷰에 나온 NDH30의 초고역대 약점을 제대로 커버해주면서 딱 치찰음이 생기지 않을 수준에서 전체 해상도를 끌어 올려 줍니다.
DAC단에서의 약점을 엠스케일러로 커버한 캐럿루비는 NDH30에 더는 덱앰을 바꿀 필요도 없을 정도의 매칭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혀 약점이 없냐 하면 그런 건 아닙니다. 엠스케일러-캐럿루비-G5의 3중 조합을 했을 때의 그 단단하면서도 한점의 왜곡도 없는 소리와 비교했을 때 살짝살짝 구형 앰프 특유의 뭔가 정확하지 않게 어물쩍 넘어가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또한 G5 보다는 저음에서의 단단한 박력이 살짝 모자란다든지 중음부가 아주 살짝 비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합니다. 이게 토핑 G5 같은 훌륭한 앰핑 기기로 비교를 해서 드러나는 정도이지 완전 이상하고 부족하게 들린다던지 하는 건 아니고 충분한 음악적인 즐거움을 저에게 선사해 줍니다.
엠스케일러를 들였을 때 미리 예감 했었습니다. 이러면 분명이 조만간 휴고TT2를 사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엠스케일러-캐럿루비, 또는 G5를 곁들인 3중 조합까지 다양한 음악에서 이 두 조합으로 오래 즐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듭니다. 또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제 지갑의 보존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이 사용기를 작고하신 김동호 사장님께 바칩니다.
좋은 기기를 남겨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린다는 말로 사용기를 마칠까 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