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 2차 청음기(feat. ER4)

 우선 글을 쓰기에 앞서, 제가 이전에 썼던 EVO 청음 후기를 보신 영디비 유저 여러분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저번에 사운드캣에서 EVO를 처음 청음했을 때, ER4 제품군(이하 'ER4')보다 공간감은 풍부하되 해상도는 별 차이가 없다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https://www.0db.co.kr/FREE/2014554?l=ko 참조)

 그런데 이번에 다시 청음을 해보니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번에 청음을 했을 땐 EVO만 청음을 했지만 이번에는 ER4와 대조하면서 청음을 했기 때문이죠.

 저번엔 시간도 넉넉지 않았을 뿐 아니라 ER4 자체야 워낙 해상도가 좋았으니 ER4와 굳이 번갈아서 청음하지 않아도 'ER4의 소리는 대충 이럴 것이다' 면서 기억해낸 소리가, 특히 해상도에서 EVO와 비슷하게 됐었는데 실제론 완전히 달랐습니다. 기억이 왜곡돼 버린 거죠. 사람의 기억이란 게 왜곡되기 십상이란 교훈도 깨달았습니다. 이래서 기억에만 의존하지 말고 일일이 직접 체험을 해봐야 하나 봅니다. 이헤폰의 세계에선 '체험'이란 당연히 청음이 되겠고요.

 "그래서, 다시 청음했을 땐 어땠느냐?"고 질문하실 겁니다. 어땠느냐? 해상도는 ER4보다 훨씬 우수했습니다. 이는 XR, SR 모두 해당합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면 "훨씬 자연스러운 소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몇 가지 음원파일을 'XR➡️EVO➡️SR' 순서대로 반복하면서 청음을 해봤는데, 이 중 EVO를 청음했을 때만 소리가 보다 자연스럽게 들렸습니다. 처음 XR을 청음했을 땐 해상도가 좋긴 했지만 드럼 소리 특유의 탁한 느낌이 거슬리긴 했습니다. 그러다 EVO를 청음했을 때 든 생각이 "아, FLAC, WAV같은 음원파일은 이걸로 들어야 진가가 드러나겠구나"였습니다. 그러다 SR로 다시 바꾸니 밸런스에 차이만 있을 뿐 다시 소리가 탁해진 느낌이 들었죠. 다만 EVO의 공간감과 분리도는 제가 이전에 설명했던 내용과 같았습니다. 똑같이 돌비 애트모스를 끈 채로 EVO와 ER4의 공간감을 대조해 보니 EVO가 훨씬 우수했고 분리도는 EVO와 ER4와 똑같았습니다. 여러 악기 소리가 각자 따로따로 잘 들리는 느낌은 차이가 없었죠. 그런데 분리도만 빼면 나머지는 EVO가 다 우수해서 굳이 분리도까지 따질 필요가 있나 싶네요.

 여하튼 결론을 다시 내야겠어요. 제 결론은 "EVO는 닥치고 사라"입니다. 에티모틱이 EVO를 출시하기 전에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ER4를 왜 떨이로 판매하고 있었는지 잘 알겠더군요. 저번에 쓴 글에는 공간감같은 거 안 따지면 웬만하면 ER4에서 종결해도 된다고 했는데 절~대 아닙니다. 그냥 웬만하면 돈 더 내시고 EVO에서 종결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비록 케이블이 너무 가늘어서 엉키기 쉬운 단점이 있지만 그걸 만회하고도 남을 음질입니다. 몇 십만 원 아깝다고 그냥 ER4를 사지 마시고 차라리 EVO를 사십시오. 나중에 EVO와 ER4를 대조하면서 청음하실 때 땅을 치고 후회하실 지도 모릅니다.

 타겟이요? 퓨어한 DF 타겟이 아님 뭐 어떱니까? EQ로 조절하면 될 텐데요. 타겟이 맘에 안 드시는 분들은 그냥 EQ를 조절해서 원하는 타겟으로 맞추시면 좋겠네요. 소리는 ER4보단 훨씬 자연스러운걸요. 이건 제가 악명높은 삼단팁을 귓구멍이 얼얼하도록 꽂았다 뺐다 하면서 얻어낸 결론입니다. 정 못 믿으시겠다면 사운드캣으로 가셔서 직접 청음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