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HD650이 쩌리가 아니던 시절
오랜만에 소장 중인 소박한 컬렉션을 한번씩 비청해줄 목적으로 꺼냈습니다. 오늘도 베이스라인(비교대조군)은 언제나처럼 오랫동안 함께해 온
국밥같은 그 녀석 HD650. 그런데 이 녀석이 오랜만에 비청하려니 생각보다 퍼포먼스가 영 안나오는 겁니다. 내가 아는 HD650은 이렇지 않은데...
라며 고민하던 찰나 케이블에 시선이 멈추고, 문득 고수님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시던 말씀을 떠올립니다. 바로 젠하는 기케 매칭이 최고라는 것.
THX887을 들이고 한창 모든 케이블을 밸런스드로 바꾸던 때, HD650도 밸런스로 들어보고는 싶은데 고가의 케이블을 살 여력은 안되다 보니
알리에서 저렴이 of 저렴이로 샀던 XLR 케이블을 바꿔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6.3 싱글엔드라도 저렴이 케이블보다는 기케가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때문에 기케를 넣어서 한켠에 박아두었던 HD650 박스를 꺼냈는데 새삼 HD650이 플래그십은 아니라도 하이엔드 급이던 옛날의 위상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660S2나 490PRO 같은 대놓고 상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560S같은 하위기에도 성능에서 밀린다는 평을 받으며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지만
제가 650을 큰맘먹고 질렀던 그때에는 HD650이 지금같이 메인스트림이 아니라 하이엔드급이었습니다. 위로는 플래그십에 속하는 700과 800밖에 없었죠(지금 찾아보니 800s 출시도 16년에나 이뤄졌었네요). 박스도 당대 위상에 걸맞게 고급스러운 디자인(폰트 음각 등등)과 내부에는 무려 경첩까지 달린 하드박스에 완충제와 들어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작해야 종이박스 내부에 비닐로 대충 감아다 넣어놓은 걸로 아는데 말이죠. 심지어 정가 기준 70만원대인 660s2도 파우치 안에 담겨있네요.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박스는 아니지만 펠트(?)소재의 박스가 제법 튼튼하고 고급집니다.
개인적으로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고 걱정이 큰 입장에서 친환경 포장 기조는 극구 찬성입니다만, 단 한가지 이런 걸 덜 걱정했고 덜 걱정해도 됐던 그때의 낭만과, HD650의 위상 변화가 새삼 실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650이지만 팔아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은 제가 가진 헤드폰 중 가장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1차 구매자라서 더욱 애정이 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근데 그렇다기엔 마찬가지로 1차 구매했던 DT 990 Pro는 팔아버렸군요...). 옛날의 위상도 생각나고요. 시코시절 HD650은 그때 활동하던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찬양하던 기기였지요. 이것저것 써봐도 650만한 게 없더라란 평이 줄줄이 이어지던 걸 보고 저도 학생이던 입장에서 고가였지만 주저 않고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사실 이어폰이 메인이었어서 별로 듣지는 않았어요... @카스타드님 이 앞선 한 게시글에서 10년간 고장나지 않은 젠하 내구력에 찬사를 보내셨지만 그냥 사용을 많이 안한 것뿐이었다는 사실. 근데 보관을 대충해서 패드눌림이 비대칭으로 생겨버린 점은 아쉽습니다. HD800S를 쓰면서 유저에 맞게 눌려가는 패드의 매력을 알아버렸는데 이녀석을 위한 패드도 새로 지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앞으로도 많은 이헤폰을 듣고 개중에서 몇몇은 여력이 된다면 구매도 하겠지만, 이 녀석 HD650 만큼은 가지고 있으려고 합니다. 물론 또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10년간 다양한 걸 사고팔면서도 갖고 있었던 걸 보면 앞으로도 어찌저찌 갖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워낙 구닥다리라 내놔도 살 분도 있을지 모르겠고 말입니다. ^^
P. S. 사운드 문제는 이놈의 저렴이 알리산 묻지마 XLR 단자의 케이블 문제가 맞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막귀인 저는 케이블 차이를 별로 못느낀다고 생각하는데 이녀석은 HD650 소리를 심하게 너프먹이고 있던 거더군요. 심지어 밸런스드인데 6.3 기케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6.3 기케를 쓰니 비로소 제가 알던 650 소리가 나옵니다(볼륨노브를 조금 더 올렸어야 하는걸 보면 저항값이 낮은 모양인데 말이죠). 이 케이블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소리가 너무 별로인데다 저렴이라 되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긴 뭔가 또 아깝고...
650을 젠하 밸런스 기케로 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습니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나중에 보다 자금여유가 생겼을 때 600 시리즈용 4.4 기케가 포함된 660S2를 지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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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쓰기그래도 엔디님 말씀 덕분에 얘가 옛날에는 그정도였어, 라고 어깨가 올라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HD650. . .해외에서는 6시리즈 1픽이죠. 진심으로 대단히 부럽습니다. 본인도 죽기전에 꼭 가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 박스의 분위기.. 추억이네요.
마지막 사진의 뉴트릭 짭 단자는 소리가 참 별로였습니다.
보다 현대적인 느낌으로 디자인하려고 애쓴 것 같지만 현행 박스 디자인보다 저때가 나은 건 저뿐인가요? 감사합니다 ^^
저도 언젠가 그 애틋한 사랑에
녹아 볼 날을 기다려 봅니다.
ㅋㅋㅋㅋ 누군가 한분은 이런 반응을 해주시길 예상하고, 기대하고, 걱정했습니다. 워낙 팬층이 두터운 녀석이다 보니 말이죠. 나름 10년차 보유자로서 농담삼아 한 말이니 혹시 심기를 거슬렀다면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 감사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쩌리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Respect!!!!
좀 오래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듯 합니다.
보유중이신 컬렉션을 생각해보면 650 같은 중급기는 낄 곳이 없어 보이긴 합니다. ㅎㅎ 600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기기지만요. 감사합니다!
새 기기 많이 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
덱엠 업그레이드했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ㅠㅋ
저는 HD650 대신 짭(?)으로 HD6XX를 가지고 있는데요. 화려한 맛은 없지만 몇 시간씩 음감해도 전혀 피로감이 없는 정말 좋은 헤드폰입니다.
HD650은 한번씩 청음샵에서 자주 찾아 들어봅니다. 그만큼 제 취향엔 매우 부합하는 헤드폰이라서... 제 라인업과 중복만 아니었어도 한대쯤 분명히 들였을 겁니다.
프로쪽 장비라 프로용 젠하이저를 취급하는 매장이 있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저도 서울 여러 청음샵을 방문해봤지만 부산 더사운드랩 말곤 청음용 기기를 본 적이 없네요.
NDH30은 중음대 성능이 개선되어 그 묘한 베일을 걷어내고 드라이버 배치로 입체감이 개선된 HD650이라 보셔도 무방합니다.
HD650이 쩌리였다면 저는 결코 구매하지 않았을 겁니다. ㅋ
10년 가까이 귀동냥으로 들어보며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10년 전에 첫 신품 레퍼런스 헤드폰으로 선뜻 선택했지요.
HD600에 오르페우스 느낌 2% 가미한 느낌입니다.
아직도 아끼며 잘 쓰고 있습니다.
저처럼 10년차에, 1차 구매자시군요! ㅎㅎ
HD600에 오르페우스 느낌이라, 오르페우스는 안 들어봤지만 어떤 느낌을 말하시는지 오르페우스도 같이 상상이 됩니다. 앞으로도 함께 오래오래 같이 HD650 오너가 되어주세요. 감사합니다 ^^
어휴;; 저는 고수도 아닌데 감히 고수이신 로드러너님을 혼내다니요!! ㅋ;;
설령 쩌리였어도 어떤가요. 그 와중에도 로드러너님의 탁월한 안목으로
HD650을 잘 선택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ㅋ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야말로 정말 HD650을 쩌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테 W100이라는 좀 극단적 성향을 가진 녀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HD650은 상대적으로 사운드가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었지요.
그 인식이 보정되어 쩌리가 아니라고 느끼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HD650은 보편성과 젠하이저만의 컬러를 모두 양립한
진심으로 대단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내구성도 가장 좋은 축이예요!!
W100도 물론 보편성에 매우 진한 사운드를 갖고 있지만,
임피던스가 낮고 기복이 크지 않음에도 다루기 쉽지 않은 난해함과
다소 무거운 중량과 취약한 내구성 부분은 많은 여지를 남기네요.
ㅋㅋㅋㅋ 어쩜 저랑 똑같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창 멋모를 때 HD650 듣고 뭐야 이게 전부야? 하고 DT990Pro 사서 만족했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990프로가 팔려 나가고(그런데 사실 990프로는 여전히 좋은 헤드폰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650이 남아 있죠. 이런 거부할 수 없고 정녕 저버릴 수 없는 면모가 젠하이저만의 매력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예전엔 정말 HD600도 상위기기이고 그것보다 위였던 650은 말 그대로 하이엔드이던 그때가 있었죠 ㄷㄷ
자금이야 많이 나왔지만 그때의 낭만이 나름 그립긴 핮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