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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잡담입니다 ^^;;

굳지 굳지
306 4 13

90년대 초반,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를 외치며 불을 피우고, 옐친이라는 고주망태에 의해 결실을 맺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이뤄진 시절을 지나고... 
  
 이제 학업에 전념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름 충실히 공부하던 중에도 
 제 내면에서는 무엇인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 목마름을 해결할 하나의 방편으로 성경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저희 강의실로 중학교 동창 녀석이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시절 같은 반도 했지만 얘기를 많이 나누거나 함께 다니지는 않았던 친구였고,  
같은 대학을 다니는지도 몰랐는데 저를 찾아와 성경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신기했습니다. 제 마음 속을 들킨 것 같았지요. 
 그래서 따라갔습니다. 
 동아리방들이 모인 건물에 위치한 어느 동아리 방이었습니다. 
 기독교 동아리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름을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거기 우리 학교 출신이라는 여자 선배가 있었고, 그 선배와 면담을 하고 한달 동안의 기초 성경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여자 선배는 참으로 참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달의 성경 공부를 나갔던 이유 중에는 그 선배를 보기 위함도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 받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습니다. 주로 이 선배와 1대 1 수업으로 이루어졌죠. 몇 번 기도 모임에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다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큰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이 인상 깊었죠. 굉장히 기도에 몰두하고 있나 보다 생각 했었습니다.
  
 사실 성경 공부의 내용은 별로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었습니다. 
 몇 개 기억나는 것은 선악과의 의미의 성적인 해석 같은...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과 이사야라는 선지자의 이야기 등등... 특별히 이상할 만한 것은 없었죠.
  
 한달의 교육을 마칠 무렵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동아리의 종파는 어디에 속하는 것이냐고..  
 그랬더니 감리교의 한 분파라고 하면서,  
 우리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중에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얼버무리는 듯한 늬앙스의 답을 들었지요.
  
 그리고 교육을 모두 마친 어느 날 선배가 본당의 일요 예배에 가보자고 하더군요. 
 원래 저 같은 초심자는 데려가지 않지만 특별히 같이 가는 거라면서... 
 그러면서 우리는 *** 라고 부른다고 알파벳 약자를 처음으로 얘기해 주더군요.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000 00 00의 약자라고.. 뭐라 뭐라 설명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기독교의 이단이나 종파 등에는 거의 무지햇던 저는 그런가 보다 하고 별 의구심은 없었습니다. 
 
 다음 일요일에 그 선배를 만나 본당 예배에 갔습니다. 
 당시 낙성대에 있던 꽤 큰 체육관과 비슷한 실내 크기와 형태의 그 곳에는 정말 많은 신도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특징적인 건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치어리딩 복 차림의 여신도들도 있었던 것 같네요. 
 교회 체육 행사에 필요한 복장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거기 연단에는 제게는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준, '그 분'이 있었습니다. 
  
 예배가 진행 되면서 그 간의 행사 영상을 커다란 스크린에 보여 주는데, 축구 경기를 하더군요. 그 '선생님'께서 선수들을 홍해를 가른 모세처럼 가르며 골을 열 몇 골을 넣었다고 했었나? 허허...     
 
 찬송?을 모두 합창할 때는 그 '선생님'께서 지휘라고 하는데 
 허공에 팔을 마구 휘젓는 겁니다. 속으로 뜨악 하고 있는데 
 선배가 옆에서 제게 묻더군요. "우리 선생님 지휘 정말 잘 하시지 않니?"  
 허허... 이 무슨...  
  그 때 제 머리 속을 채운 한 가지 생각은 십계명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는 살아 있는 우상을 섬기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예배가 끝나고 선배가 제 손을 잡아 끌어 그 '선생님' 앞으로 데려가 인사를 시킨 것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그 선생님의 첫 인상은   
 찢어진 눈매에 전체적인 인상이 흔히 종교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선함이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먼 날카로움이 느껴졌지요.  
 선배가 저를 뭐라뭐라 소개하고, 악수를 하며 잠시 저를 노려보듯 훑어보던 그 '선생님'이 제게 뭐라 했던 것 같은데 아마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뭏든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생각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 예배를 마지막으로 동아리 방에 가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삐삐나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학교에서 강의실로 찾아오거나, 집 전화로만 제게 연락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런 접촉 시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주말에 모르는 여자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자신이 선배의 친구라고 소개 하면서 왜 요즘 나오지 않는지를 묻는 겁니다.  
 이제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저를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 했는데 자꾸 요구를 해 결국 봐야지 끝이 나겠다 싶어 약속을 잡았습니다. 
  
 어느 전철역 앞 커피숍에 갔더니 나와 있더군요. 
처음 보는 여자 (연배는 그 선배 정도 였던 것 같았습니다)였습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닙니다. 
 꼭 유도 같은 운동을 했을 것 같은 체격 좋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 친구 세 명이 그 여자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겁니다.  
 그 때 제 머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것들 봐라.. 논리로 싸우고 언쟁해봐야 먹히지 않을 사람들이구나. 
 싫다, 아니다 만 해야겠다!!' 
 
 제가 말을 않고 그 뒤에 서 있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 여자가 그 친구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게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왜 안 나오냐, 다시 나와라,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냐? 등등. 
 선배가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도 있엇던 것 같네요. (물론 저도 선배"는" 보고 싶기는 했습니다.)
이후는 저와 그 여자의 끈기 싸움이었습니다.  
 절대 상대방의 말에 질문하거나 반박하거나 하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침묵하거나, "싫습니다", "아니요"만 상황에 맞춰 대꾸 했습니다. 
 거의 2시간을 저 두 마디만 반복했던 것 같네요. 
 그 여자도 정말 질기더군요. 
   
 그렇지만 결국 물러갔습니다.   
 그 뒤로 선배도, 처음 찾아왔던 그 중학교 동창놈도 만나지 못했네요. 
  
 그 곳이 요즘 많이 나오는 그 곳입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당시에는 흐릿했던 많은 의문스러운 연결 고리들이 확실해지더군요. 
  
 선배와 성경 공부를 하던 어느 날,  
 그 날 공부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잠시 얘기를 나눌 때 
 선배의 나이를 질문 한 적이 있습니다. 이십대 후반이었나, 서른 쯤으로 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배는 결혼 안 하시냐고 질문했지요. 
 그 때 선배가  
 "나는 결혼 못해..." 라고 할 때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가던 쓸쓸한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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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Rise SunRise님 포함 4명이 추천

댓글 13

댓글 쓰기
profile image 1등

불쌍한 중생들이 참 많아요.  
그 중생들 등쳐먹고 사는 기생충도 많구요.  
인간은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입니다. 

03:39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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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지 작성자
재인아빠
그 때 사이비의 유지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그 안에서는 굉장히 결속이 강합니다.
인간적인 유대감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더군요.
저도 손절을 결심하고 난 후에도 그 선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꽤 오래 갔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 여린 부분이 있기에, 그 부분을 용케 찔러 들어옵니다.
03:49
23.04.26.
profile image
굳지
사기꾼은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닌것 같습니다. 교묘하고 치밀하기가....
03:59
23.04.26.
2등

씁쓸하네요. 재빠르게 나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08:22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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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지 작성자
byoo
그러게요. 큰 피해 없이 초반에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죠.
처음 한달 동안 뭔가 뚜렷하지는 않아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 것과
본당에서의 그런 말도 안되는 우상화를 목도한 것이 강하게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인간적인 관계에 매여 이리저리 끌려다녔을 지도 모릅니다.
10:32
23.04.26.
profile image 3등

몰입감 있게 쓰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모든 사이비 종교는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대상을 알아보는 눈이 있더라고요.  
그게 그들의 생존본능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경제관련 커뮤니티에 있던 글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주위에 호구가 보이지 않으면 내가 호구다" 
내게 갑자기 행운이나 은인이 찾아올 때는 의심해야 한다가 제 경험 중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요.

09:46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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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지 작성자
purplemountain

 그들에게 제가 호구로 보였던 것이군요. ^^;;;; 
 
 

10:33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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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지

헐.. 아뇨 그들에게 가능성 있는 타겟으로 보인거죠^^
갑자기 행운이 찾아오는 그런 경우보다 멋잇감으로 보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미였습니다-.-  
저도 되돌아보면 호구로 보였던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글 내용을 보니 마지막에 현명하게 대처하셨네요.
어짜피 로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그들을 이기기 힘드셨을테니까요.  
글도 정말 잘 쓰셨어요~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10:43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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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지 작성자
purplemountain
아뇨.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신기하게 제가 내적으로 흔들리고 있을 떄 그 친구녀석이 떡하고 찾아왔거든요.
정말 신기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그 친구에게 순진(호구?)하게 보였나 싶기도 하고...
저도 해봤던 생각입니다.^^;;;,
10:59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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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지 작성자
트리거왕

ㅎㅎㅎ 뭘요...
성경 공부하면서 그 선배에게 어렴풋한 연애 감정도 느꼈던 것 같고...
잘 빠져 나왔으니
어떤 면으로는 나쁘지 않은 추억입니다. ^^;;

11:03
23.04.26.
profile image

정말 큰일 날뻔 하셨습니다. 고생 하셨습니다.

13:29
23.04.26.
profile image
굳지 작성자
박지훈
고생은요.
다행히 너무 얼토당토 않은 모습을 제게 빨리 보여줘서 큰 고민도 필요 없이 손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걸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동아리 회원들과 많은 교분을 쌓지 않은 상태에서 저를 본당에 빨리 데려가 실체를 보여 준 것, 그리고 제가 동아리에 나가지 않자 선배가 직접 연락해 오지 않고 제겐 생면부지의 친구라는 사람이 연락을 한 것도 선을 긋는 것을 더 쉽게 만들어 줬던 것 같아 선배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매스컴을 통해 어두운 사실들을 접하고, 그 선배의 쓸쓸했던 표정이 뭘 의미했던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니 마음이 아프더군요.
14:01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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