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MDR-V900

대한민국 택배 대단합니다.

어제 오후에 출발한 물건이 오늘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많이 기대한 건 아니었으나, 반반으로 생각했던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전형적인 90년대 헤드폰의 소리네요.

비정질 다이아몬드 증착 드라이버랬는데, 증착 진동판의 느낌이 그닥 없고

마그넷의 자력이나 보이스코일의 에너지 모두 크지 않습니다.

빈 깡통소리라며 혹평 잔뜩 들었던 HD 드라이버의 하이그로시 버전에 비해

해상력, 투명감, 대역폭 등등 모두 훅 떨어지네요. 어이쿠... ㅋ

 → 낡은 폼 디스크를 걷어낸 후 소리가 확 좋아졌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드라이버 프로텍터 앞에 망사 스크린 한 겹만 덮여있는 HD 버전에 비하면

얘는 그 사이에 폼이 한 겹 더 있는데, 그마저도 세월 때문에 다 삭았습니다.

그리고, 이거 외관도 그렇지만 소리도 그냥 거의 안 쓴 헤드폰이네요.

20년 동안 안 움직였어요. 당시 소니 신품들처럼 소리가 질퍽거립니다.

뭐든 안 움직인 물건이면 소장용으로는 매우 좋으나, 기능은 좋지 못합니다.

(특히 자동차는 오랜 연식에 주행거리 짧은 차 가급적 사지 마세요...)

오래됐으니 강제번인은 안 할 생각이고 그냥 나지막히 BGM 스피커 정도로

헤드폰으로서는 좀 크게 틀어놓는 정도로 번인하려 합니다.

CD780의 아쉽던 허한 스테이징은 안 느껴지고 성향도 달라서 만족합니다.

CD780 비슷해버리면 그게 오히려 좀 더 곤란하지요.

다만 헤드폰다운 풍성함, 다이나믹함, 개방감은 CD780쪽이 훨씬 낫습니다.

저도 HD650이나 CD2000이 없었다면 진작에 CD780을 선택했겠지요.

외관이나 FR 경향이 비슷한 헤드폰 중에서는 SRH840(A 말고 노멀)라는,

사운드 측면에서만 보면 모든 면에서 더 우수한 대체재가 있겠습니다.

플라스틱 내구성은 비등비등할 것 같습니다.

저 처럼 이 시절 사운드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현 시점에서 굳이 애써 찾아야 할 필요성은 없겠습니다.

동일인지 유사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비슷한 드라이버로 추정되는

CD950이나 CD999보다 낫지는 않을 듯 합니다.

그래도 애시당초 생각했던 성능 애매한 몇 가지들 정리 통폐합용으로는 충분합니다.

온 관절이 삐걱거리는 V700, 그리고 쏘는 CD900ST를 대체할 용도로는 충분하고

AVA500이랑은 비등비등, HD569보다 성능은 딸리는데 토널은 그럭저럭 맘에 들고.

D1001보다는 전부 다 딸리지만 소니 특유의 캐릭터에 대한 향수로 뭉갤 수 있는데다

폴딩 타입이라 보관성과 휴대성마저 좋습니다.

얼추 5대를 대체할 수 있을 듯 합니다만, 결국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V900이 워낙 옛날 헤드폰이라 그 하나로 뭉갠다는 건 좀 과장이고...

저 다섯가지들이 조금씩은 V900보다 나은 부분들을 다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죄다 싼 것들만 들여놓다보니 정리해봤자 금새 생활비로 증발할 푼돈이고,

애당초 안 팔거라며 제 이름을 끄적끄적 새겨놓은지라 매매는 아예 불가능이네요.

(잘 한다... 그런데 어차피 지박령 노리고 추노마크 박은 거잖아)